경남 김해의 문화재 탐방에서,

김해시 한림면 장방리에 있는 김해 장방리(金海 長方里) 갈대집을 찾았습니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 421호로 지정된 "김해 장방리 갈대집 (金海 長方里 갈대집)"은,

화포천 습지를 마주 하는곳의 산언덕에 갈대집 3동이 자리하고 있어.

낙동강으로 향하는 화포천에 홍수로 인한 범람으로 부터 안전을 고려한 배치로 보이며,

한림면 장방리의 화포천 연변에 있는 마을이름이 "초막골"로 초막집이 많은 마을이라는 뜻으로,

옛날에는 이지역이 갈대집이 군락을 이루며 마을을 형성 했슴을 알수 있습니다.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는 안채의 모습으로,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아래채로 구성된 장방리 갈대집 3동은 억새로 지붕을 이은 새풀집 민가로,

이들 민가 3동의 초창연대는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1592-1599) 이후부터 낙동강 지류에 해당되는 화포천 연변에 피난 온 사람들이,

갈대와 억새로 지붕을 이은 초막집을 짓고 거주하기 시작했다는 증언과 유구의 건축수법 등으로 미루어 보면,

이들 가옥은 최소 1900년대 이전에 초창 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며,

 

 

 

장방리 갈대집에는 사람이 거주하고 있어,

영강정(永江亭)의 현판이 있는 안채의 현판으로,

 

 

 

문을 두드리고 안채를 들여다 보니 스님이 사용하고 계셔서,

 

 

 

갈대집 윗쪽 중턱에 "경강사"라는 작은 사찰이 있어,

장방리 갈대집 민가3동은 사찰에서 관리 및 사용하고 있는듯 하며,

 

 

 

3동의 갈대집 가운데 현재 요사채 또는 스님의 거처로 사용되는 안채는,

1945년에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3동의 집은 방 2칸, 마루 또는 부엌이나 창고 1칸으로 된 기본적인 초가삼간의 오막살이집 입니다. 

 

 

 


안채에서 보이는 풍경으로,

앞을 가로 지르는 철길로 인해 화포천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김해 장방리 갈대집은 화포천 습지주변에서 많이 자라는 갈대와 억새를 지붕 재료로 사용한,

특색있는 김해지방 부농형 민가(남동해안형)라는데 특색이 있습니다.

 

 

 

안채와 "ㄱ"자 형태로 서향으로 서있는 사랑채와 뒷쪽에 있는 아랫채는,

1920년대 건축한 것으로 평면과 구조 입면 등에서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 민속학의 측면에서 가치가 크다고 합니다.

 

 

 

사랑채의 북편에는 창고와 아궁이를 겸한 공간이 있어,

안을 들여다 보니 지붕의 골격을 이루는 서까래가 그리 굵고 고르지 않아,

나무가 흔하지 않은 서민가옥임을 알려 주는듯 하고,

 

 

 

갈대집의 처마를 들여다 보니 갈대와 억새로 층층이 올려진 모습으로,

길에서 올려다보면 외부는 비와 햇볕에 노출되어 검은색에 가까운 회색으로 변했지만,

안쪽은 원래의 색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

지붕은 50㎝에 가까운 두께로 화포천의 억새와 갈대의 대를 쌓아 이었는데,

억새가 훨씬 더 많이 들어 갔다고 하며 한번 지붕을 올리면 적게는 30년에서 길게는 50년까지 쓸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가옥은 초가로,

서민 대부분이 농사를 지었기에 볏짚은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여서 겨울이 오기전에 볏짚으로 새 지붕을 이어 올렸는데,

볏짚이 귀한 지역에서는 그 지역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로 지붕을 올려 나무가 많은 강원도는 송판이나 나무널판을 얹는 강원도의 너와지붕이,

제주도는 지붕이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새끼줄로 엮어 묶고는 돌을 매달았습니다.

 김해 장방리에는 갈대집 또한 구하기쉬운 화포천의 갈대와 물억새로 그지역 환경에 맞는 특색있는 지붕을 올렸는데.

세풀지붕집은 1970년대의 새마을운동 이전까지는 마을을 이룰 만큼 흔했다고 하나 현재는 이곳 갈대집 이외에는 흔적을 찾을수 없습니다.

 

 

 

초막집으로 불리는 갈대집은 초가에 비하여 경사가 심한편 인데,

아마도 재료의 특성을 고려하여 비가 안으로 스며드는것을 막고자 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지역의 특성을 살린 민가로,

경남 김해의 장방리 갈대집 (金海 長方里 갈대집)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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