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경주의 정자문화재 탐방에서,

경주시 마동에 있는 덕봉정사(德峯精舍)를 찾았습니다.

 

경주 덕봉정사(德峯精舍)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1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덕봉정사(德峯精舍)의 사주문은 닫혀 있으나,

뒷쪽의 관리사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길을 택하면 들어가 볼수 있으며.

주차장은 그리 넓지는 않으나 주차에는 어려움이 없습니다.

 

 

 

덕봉정사(德峯精舍)는 조선 후기의 학자 덕봉德峰) 이진택(李鎭宅, 1738∼1805)이,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후진을 양성하던 작은 초당으로,

증손인 이우영은 덕봉을 추모하기 위해 사당을 세우기도 하였으며,

1905년(고종 42)에 증조부의 유촉이 서려 있는 마동에 조용히 은거하여,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가르치는 덕봉정사(德峯精舍)를 건립하고 덕봉을 추모 하였습니다.

 

 

 

정자는 자연경관을 고려하여 "ㄴ"’자 형태로 짓고,

건물의 모서리에 추녀가 없이 용마루까지 측면 벽이 삼각형으로 된 지붕인 박공지붕과,

아래 절반은 네모꼴로 된 지붕인 ‘팔작지붕’을 얹었으며 목재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 줍니다.

 

 

 

덕봉정사(德峯精舍)의 현판으로,

이진택(李鎭宅)의 호 덕봉(德峰)에서 이름을 가져 왔다고 하며,

 

 

 

정자의 기둥하부와 초석은 화강암으로 되어 있어,

팔각초석과 원형초석을 함께 사용 하였으며,

초석인 연화대나 대부분의 목재를 폐사찰의 건축자재를 활용하여 지었다고 하며,

 

 

 

덕봉정사(德峯精舍)로 오르려면,

정자 뒤편의 계단과 쪽마루를 통하여 마루로 들어갈수 있어,

 

 

 

덕봉정사(德峯精舍)는 정면 4칸 측면 1칸반의 "一"자형의,

중앙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의 평면에,

동편에 정면 1칸 측면 2칸을 앞으로 붙여내어 "ㄴ"자 형의 정자를 완성 하였으며,

 

 

 

동쪽에 있는 방문 위에는 경모재(景慕齋)의 현판이 있고,

 

 

 

마루 위에는 4기의 현액시(懸額詩)와 상량문(上樑文)을 비롯한 덕봉정사기(德峯精舍記) 등의 기문(記文)들이 있어,

도난을 우려함인지 모두 사진으로 편액되어 있습니다.

 

 

 

정자의 동쪽방인 경모재의 마루쪽으로는 접어 열 수 있게 만든 큰 문인 사분합문(四分閤門)을 두었고,

문에는 팔각 불발기창으로 꾸며 두었으며,

 

 

 

경모재의 사분합문 위에 붙어 있는 여의주를 문 용두의 모습으로,

충량 뺄목에 용머리를 장식하여 덧붙였습니다.

 

 

 

서편의 방은 동쪽과 같이 마루쪽으로는 넌출문인 사분합문(四分閤門)을 두었으나,

따로 팔각 불발기창 등으로 장식을 넣지 않았고,

 

 

 

서쪽 방에는 이진택(李鎭宅)의 호를 딴 "덕봉헌(德峯軒)"의 현판이 있고,

 

 

 

동쪽의 방인 경모재(景慕齋)의 내부를 들여다보니,

옛날의 가재도구들과 행사용으로 쓰였을 상의 모습들이 보입니다.

 

 

 

처음 이곳에 자리잡은 이진택(李鎭宅, 1738∼1805)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양중(養重) 호는 덕봉(德峯) 경주 출신으로,

이진원(李晉遠)의 문하에 나아가 수학 하였고,

8세 때 닭싸움을 보고 “상앙의 법률로 논죄할 것 같으면, 이 닭은 당장 삶아 먹을 것을(若論商鞅法 此難當烹食)”이라는 글을 지어,

선생을 놀라게 하였으며,

1780년(정조 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를 거쳐 성균전적·예조정랑·사헌부감찰·병조좌랑·사헌부지평·장령 등을 역임 하였고,

김상로(金尙魯)·홍계희(洪啓禧)가 사도세자 사건에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그의 부관참시(剖棺斬屍)를 주장 하였으며,

1793년 그가 대간으로 있을 때 사노비혁파(寺奴婢革罷)를 주장한 상소를 올려 사노혁파에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여,

이러한 개혁론의 여파로 1801년(순조 1)에는 공노비 해방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때, 정조의 신임을 크게 받아 탕평책을 후원하고 실행하였으나 정조사후에 관운이 좋지 않아,

1802년서유방(徐有防) 등을 옹호하였다는 이유로 이곳에 기거하고 있다가 함경도 삼수로 귀양갔다가 2년 뒤에 풀려났고,

1805년 68세를 일기로 졸 하였으며 저서로는 덕봉문집(德峯文集)이 있습니다.

 

 

 

정자 앞에는 시원스레 호방한 연못이 있고,

그 안에 갖가지 초목들이 무성한 원형의 섬이 있어 조경이 뛰어나 운치를 더해주고 있는데,

연못은 풍광을 위하여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연못을 갖춘 정자들이 바깥경관을 고려하지 않는데 비해,

이곳은 주변의 경관을 고려해 건물도 "ㄴ"자 모양으로 지었고,

보머리며 계자각난간이며 추녀며 도리들은 정교하고 세심하게 잘 다듬고 조각한 목재의 고색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 주어,

여성적인 부분이 가미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덕봉정사(德峯精舍)의 골격과 모습은 남성적 입니다.

 

 

1800년대에 초당으로 자리 하였고,

1905년에 크게 세워 중창한지는 120여년이 다되어 가는 정자문화재로,

이진택(李鎭宅)의 유허가 있는 경주이씨 소정덕봉공파 문중의 정자,

경북 경주의 덕봉정사(德峯精舍)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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