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에 있는, 

조선 시대 진해현 관아 및 객사 터인 "진해현 관아 및 객사유지(鎭海縣官衙─客舍遺址)"를 찾았습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44호 로 지정되어 있는,

진해현 관아(鎭海縣官衙)의 입구로 관청으로 들어가는 누각은 보이지 않고 사주문(四柱門)이 있어,

원래의 모습은 아닌듯해 보이며,

 

 

 

관아 앞에는 역대(歷代) 현감의 공덕비(功德碑) 16기(基)를 모아둔 비석군이 있어,

선정비(善政碑)는 불망비(不忘碑)라고도 하며 선정을 베푼 관리가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그 덕을 기리기 위해 고을사람들이 세워주는 비석으로 조선후기에 한때 유행 하였던 쇠로만든 비석인 철비의 모습도 보입니다.

 

 

 

참고를 위해 가져온 지도를 통하여 알수 있듯이,

진해라는 명칭은 지금은 대부분 군항제로 유명한 옛 진해시로 알고 있지만,

진해는 조선시대까지는 마산시 서쪽편 고성, 진주 사이에 있는 옛 웅천현에 속했던 지역 였으며,

진동면에 있는 진해현(鎭海縣)은 고려시대에 처음 현이 설치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계속 유지되어 왔으며,

이 지역은 농토가 넓은 편이고 해안이 군사적 방어에 유리했던 지역으로 함안으로 가는 교통의 요충지여서 고대 이래로 지역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사주문을 들어서면 너른마당을 두고 진해현 관아(鎭海縣官衙)가 있어,

조선 순조 32년(1832년) 진해현감 이영모(李寧模)가 형방소(刑房所)를 비롯하여 사령청(司令廳), 삼문(三門), 객사(客舍),

마방(馬房) 등의 부속건물과 함께 진해현 관아로 건립 되었으며,

지방 업무를 보던 곳으로 중심건물인 동헌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조정에서 파견된 관리들의 숙소였던 객사,

오른쪽에는 군령을 출납하는 사령청, 앞쪽에는 말을 사육하는 마방과 지방의 형사를 담당하는 형방소 등의 부속 건물이 같이 있었다고 합니다.

 

 

 

관아의 중심 건물인 동헌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一"자 형의 팔작지붕의 건물로,

중앙에 대청을 두고 좌우에 1칸 규모의 온돌방을 둔 형태로 동헌건물로는 규모가 큰 편에 속하여 진해현의 위상을 알수 있으며,

마루 중 일부에 네모기둥을 두었고 두 개의 목재를 포개어 대들보로 사용한 점과 창호의 형태가 고식을 갖추지 않은 점과,

기둥선이 일치하지 않는 등에서 보수나 개축 시에 많은 변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현재의 건물은 1981년 9월~1982년 7월 해체 복원하여 단장 하였습니다.

 

 

 

동헌(東軒)의 현판이며,

 

 

 

동헌(東軒)은 현감이 공무를 집행하던 곳이며,

동헌 건물 중에는 큰규모에 대청마루가 상당히 넓은 편여서 아마도 요충지에 자리한 군현여서 너른 대청마루가 필요 했을수도 있었겠습니다.

 

 

 

동헌(東軒)으로 오르는 마루는 입구쪽에 단을 조금 낮추어 두어,

신발을 벗어 두거나 격을 위해서 설치한듯 보이며,

 

 

 

동편에 있는 온돌방은 들여다 볼수 있어,

 

 

 

앞에 쪽마루를 둔 2칸의 방은 하나로 트여 있으며,

 

 

 

서편의 방은 동편과는 구조가 달리 전면에 마루를 두지 않고 ,

후면에 마루를 두어 특이하며,

 

 

 

서편의 방은 문이 닫혀있어 들여다 보지 못하며,

 

 

 

방의 뒤편에 마루를 둔것은,

동헌(東軒)의 옆면에서 출입을 하며 업무를 보기쉽게 하기위한 구조로 여겨지며,

 

 

 

일제 강점기와 근대를 거치면서 현존 건물들이 각각 다른 구역에 나뉘어 위치하고 있어 건립 당시의 관아 배치를 정확히 알기 어려우나,

현재의 건물 배치를 생각할 때 동헌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군령(軍令)을 출납하는 사령청이 있었고,

좌측에는 조정에서 파견된 관리들의 숙소였던 객사가 있었으며 동헌 앞으로는 말을 사육하던 마방과,

지방의 형사를 관할하던 형방소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져 진해현 관아는 조선시대 지방 관아의 모습이 잘 남아 있는 좋은 예 라고 합니다.

 

 

 

동헌 앞에는 말을 사육하고 관리하는 마방(馬房)이 있어,

안내문 조차 없는 마방의 내부는 창고로 사용하고 있는듯 하여 관리에 아쉬움이 있고,

마밥의 담장 너머에는 형방소가 있었다 하나 지금은 그모습이 변형되어 있습니다.

 

 

 

동헌의 서편에는 군령을 출납하는 사령청(使令廳)이 자리하고 있어,

정면 5칸 측면3칸의 팔작지붕으로 중앙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의 구조이며,

 

 

 

사령청(使令廳)은 하부 기관으로 사령들의 집무실이며,

사령은 중앙과 지방 관청에서 심부름 등의 천한 일을 맡고 군관(軍官)·포교(捕校) 밑에 있으면서,

죄인에게 곤장을 치는 등 하는 일이 여러 가지여서 그 일에 따라 조례(皁隷)·문졸(門卒)·일수(日守)·나장(羅將)·군노(軍奴) 등으로 달리 불렸는데,

사령은 천한 신분 계층으로 목민심서(牧民心書)에는 “본래 정처 없이 부랑하는 무리”라고 표현 하였으며,

특히 지방 관청 사령들의 지방민에 대한 행패가 많아서 이들의 관직을 이용한 행패를,

혼권자(閽權者), 장권자(杖權者), 옥권자(獄權者), 저권자(邸權者), 포권자(捕權者) 등으로 구분 하였습니다.

 

 

 

사령청 뒤편에는 수령이 400년을 넘긴 노거수 푸조나무가 서있어,

 

 

 

진해현 관아(鎭海縣官衙)의 역사를 알려주듯 서있으며,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건물군 안에 진동면사무소가 들어서게 되었으며,

객사는 삼진 중학교 교사로 활용되다가 1985년 5월 불의의 화재로 소실 되었는데,

 

 

 

동헌의 동편 삼진중학교 교정에 있는 객사(客舍)는,

왕의 전패(殿牌)를 모시고 배례(拜禮)하며 조정에서 파견된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하던 곳으로,

객사는 정면 11칸, 측면 3칸의 큰 규모의 목조 와가였으나 1985년 불의의 화재로 소실되어 지금은 건물의 초석만 남아 있습니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에서 찾았던 진해현 관아 및 객사유지(鎭海縣官衙─客舍遺址)로,

오랜 역사를 지닌 관청으로 옛 진해(鎭海)의 위치와 위상을 알수 있으나,

마을안에 자리해 있어 일부러 찾지 않으면 소재를 알기 힘든 안내문과 마방의 관리등에서 아쉬움이 남았고,

적극적인 홍보와 안내체계 그리고 건물에 대한 설명문과 업무의 재현 등을 통하여 교육의 장으로 많은 분들이 찾아주는 곳으로 변모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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