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공주시 월송동 아랫사송정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인 사송정(四松亭)과,

인근에 있는 명탄서원(鳴灘書院)을 함께 찾았습니다. 

 

2곳중 먼저 들른곳은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70호로 지정된 "명탄서원(鳴灘書院)"으로,

1490년(성종 2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명성(李明誠)과 이명덕(李明德)의 충절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우려울" 마을인 명탄(鳴灘)에 건립되었던 사당으로 충절사라 불렀으며,

선조(宣祖) 18년(1585)에 서원 이름을 하사(下賜)받았다고 하며 임진왜란(1592)으로 소실되자,

1731년(영조 7)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으나,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 되었다가 현재의 건물들은 모두 1956년 이후에 다시 세웠습니다.

 

 

 

명탄서원(鳴灘書院)의 제향공간인 충절사(忠節祠) 앞에는,

세운지 오래지 않아 보이는 명탄서원묘정비(鳴灘書院廟庭碑)의 비석이 있어,

묘정비(廟庭碑)는 1985년에 건립었으며 김희진이 짓고 조득상의 글씨 입니다.

 

 

 

충절사 앞에는 담장과 동,서재가 없이 1985년에 지은 강당만 홀로있어,

대개 서원은 앞이 낮고 뒤가 높은 경사면에 세워지며,

건물배치는 사당영역이 가장 뒤쪽에 강당이 중간에 놓이도록 배치하게 되는 전학후묘( 前學後廟)의 배치형식을 따르게 되는데,

명탄서원의 건물 배치는 이와 같으며 동재와 서재 외삼문 없이 사당 아래 강당만 자리하고 있습니다.

 

 

 

강당에 있는 명탄서원(鳴灘書院)의 현판이며,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이며 뒤쪽 양 옆 가장자리 1칸은 백채로 둘렀으며,

중앙의 3칸은 기둥이 없는 퇴칸 구조로 마무리 하고 그 뒤칸은 벽채와 3개의 문으로 마무리 하엿으며,

중앙에 대청을 두고 양옆 1칸씩을 온돌 협실을 두고 있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의 배치이며,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전통건축의 멋스럼움을 느낄 수 있는 건축물로,

2단의 자연석 쌓기 기단위에 자연석을 초석으로 삼아 덤벙주초의 멋스러움이 돋보이는 건물 입니다.

 

 

 

사당인 충절사(忠節祠)에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끝까지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절개를 지킨,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인 이명성(李明誠)과 조선초기 4대왕을 모셨던 명신인 이명덕(李明德)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충절사(忠節祠)는 4단의 자연석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정면1칸은 퇴칸이며 앞은 트였고 퇴칸의 양옆은 벽채로 막았으며 민흘림기둥이고 기둥머리에 공포를 짜 올린 익공식 구조입니다.

 

 

 

사당의 뒤편 언덕에는 이명덕(李明德)의 가묘(假墓)와 묘비(墓碑)가 있어,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하며,

 

 

 

가묘(假墓)에서 내려다 보이는 사당인 충절사(忠節祠)의 전경이며,

 

 

 

명탄서원의 강당과 마을, 그리고 멀리로는 금강의 일부가 들어 옵니다.

 

 

 

명탄서원에서 내려와 사송정으로 가기위해 낮은 언덕을 넘어갑니다.

 

 

 

언덕을 넘는 길에는 원래 사송정이 있었던 곳으로,

주민들이 "장잣날"이라 부르는 곳으로 아랫사송정 마을부터 이어진 오솔길에 공산이씨 묘소가 자리한 곳이라 하였는데,

옛 사송정(四松亭)이 잇었던 곳은 찾지 못하고 금강의 전경만 바라보다가 지금의 사송정으로 향합니다.

 

 

 

사송정은 공주 맛집으로 이름난 "전통궁중칼국수" 집에서 가까이 있어 바로 찾을수 있으며,

 

 

 

낮은 언덕을 오르는길 위에 정자가 자리하고 있어,

 

 

 

사송정(四松亭)은 공주시 향토유적 제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관련 기록인 희암선생집(希菴先生集)의 시한정기(是閑亭記) 기록에 의하면,

사송정(四松亭)은 여주이씨 이상의(李尙毅,1560~1624)에 의하여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안내문에는 1701년(숙종 27)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는 이진휴(李震休)가 건립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상의(李尙毅)의 5대손 청담(靑潭) 이중환(李重煥 1690-1756)의 "택리지(擇里志)" 팔도총론 충청도조를 참고에 따르면,

“금강을 임하여 사송(四松), 금벽(金碧), 독락(獨樂), 등 4곳의 정자가 있다.

사송정은 우리 집 정자이고, 금벽은 조상서(趙尙書)의 산장(山庄)이며,

도락(獨樂)은 임씨(任氏, 현 세종시 일원의 부안 임씨)의 조상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건물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송정의 원래의 위치는 월송동 아래 사송정 마을에 위치하는데 지금은 "정자가 있었던 날맹이"라는 뜻의 "장잣날"이라는 지명으로 전하고 있으며,

1995년 공주시에서 본래의 지점에서 150m 지점에 정자를 복원 하였으며,

 

 

 

정자의 마루에 오르면 6각형의 정자로 난간을 둘렀으며,

 

 

 

사송정(四松亭)은 금강의 8대 정자로 합강정, 독락정, 한림정, 탁금정, 금벽정, 청풍정, 수북정을 함께하여 이르지만,

대부분의 공주의 정자는 시대의 발전에 따라 헐리거나 사라졌고 공산성에 있는 누각과 정자가 대부분인데,

사송정(四松亭)이 원래 6각의 정자 였는지는 알수 없으며,

 

 

 

이곳 월송동은 그 상류의 뱃놀이로 유명한 창벽(蒼壁) 으로 가는 길목으로,

창벽은 1872년의 공주목지도(公主牧地圖)에 암벽(岩壁)과 강 위의 배가 선명 하게 표시되었을 정도로 명성이 높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월송동은 공주목의 관원이나 사족들의 뱃놀이로 유명한 공북루와 창벽 사이 강변에 위치한 셈이며,

이 곳에 사송정(四松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희암선생집(希菴先生集) 권11의,

채팽윤중기보저(蔡彭胤仲耆甫著) 시한정팔경(是閑亭八景) 위중기부(爲仲起賦)의 기록으로 사송정(四松亭)의 주인을 알려주고 있어,

蒼巖百尺走虯龍    창암이 100척 높이로 솟은 곳에 규룡이 달리는데,

黛色浮江江自風    눈썹 색깔의 강물이 흐르고 강에서는 바람이 스스로 인다.

勝地輿人元有待    배어난 경치가 사람과 더불어 오래 전부터 기다리고 있으니,

四松陰下少陵翁    네 구루 소나무 그늘 아래 소릉(小陵) 이상의(李尙毅) 옹이라.

 

 

 

사송정(四松亭)은 금강을 조망할 수는 있으나 차량 통행이 빈번한 국도에 인접한 관계로 옛 정자의 흥취를 느끼기엔 부족함이 있으며,

육각 정자로 복원하면서 원래의 사송정(四松亭) 건물의 구조에 대한 고증에 의한 것이었는지 알수없으며,

금강의 8대 정자로서의 면모에도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아랫사송정에 명탄서원(鳴灘書院)의 충절사(忠節祠)에 가까이 위치하고 있어,

공산이씨(公山李氏)와 연관된 정자로 알고 있으나 사실과 다르고,

안내문에는 이진휴(李震休)가 건립한 정자로 알리고 있으나 그보다 이전에 건립 되었으며,

금강의 8대 정자에 들었던 충남 공주의 금강변의 정자 사송정(四松亭)과 공산이씨(公山李氏)의 명탄서원(鳴灘書院)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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