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안동시 평화동에 위치한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인,

"평화동 삼층석탑(平和洞三層石塔)"을 찾았습니다.

 

안동 평화동 삼층석탑(安東平和洞三層石塔)은 보물 제11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주택가에 있는 석탑의 입구에는 사찰로 보이는 건물이 있어,

들여다 보니 문위에 고심정사(古心精舍)의 현판이 있어 사찰로 여겨지며,

 

 

 

평화동 삼층석탑(平和洞三層石塔)의 기단 너비는 2.67m이고 높이 5.79m의 석탑으로,

원래 "옥동 삼층석탑"으로 불리다가 지명을 따라 "평화동 삼층석탑"으로 명칭이 변경 되었고,

석탑이 위치한 곳은 오래전부터 민가가 밀집되어 있어 사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유구는 전혀 남아 있지 않고 있으며,

석탑의 위치도 일제강점기에 철도관사를 건립 하면서 원 위치에서 약 50m 정도 이동된 것이라고 합니다.

 

 

 

평화동 삼층석탑(平和洞三層石塔)은 통일신라 중기 이후에 세워진것으로 보이는 석탑으로,

탑신(塔身)을 받치고 있는 기단(基壇)을 위·아래 2단으로 꾸민 3층석탑으로,

아래층 기단에 아름다운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고,

윗층 기단은 윗면에서 상당한 경사를 보이고 각 모서리도 약간 위로 치켜 올려진 전혀 새로운 형식을 갖추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지붕돌로 보일 정도이며,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지붕돌은 처마밑이 직선이며 풍경을 달았던 작은 구멍들이 남아 있고,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네모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만이 남아 있습니다.

 

 

 

석탑의 기단은 상·하 이중기단으로 면석의 구성이 일관성이 없으며 부재의 크기도 제각각 달라 후대에 수리되었을 가능성도 있고,

하층면석은 판석을 이용하였으나 남서쪽의 면석은 귀틀석이 사용되어 총 6매로 결구하였는데 면석의 이음은 통일성이 없으며,

면석 모서리에는 우주를 새겼으며 각 면 2주씩의 탱주를 두어 3분하고 면석 내부에는 안상(眼象)을 새겨 넣었다고 하는데 찾기 어려우며,

갑석은 상면에 1단의 상층기단 면석 받침만을 두고 그 하단에 갑석의 내밀기가 거의 없을 정도로 짧게 마무리 되었고

상층 기단면석은 총 8매로 결구되었는데, 각 면 면석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고 이음방식도 일정치 않아 통일성이 없으며,

양쪽에 우주와 중앙에는 2주의 탱주를 두었고 상층 기단갑석은 3매로 구성 되었으며,

남측면으로 1매석을 두어 이음이 없으며 동서북면에는 중앙부에 이음이 있고,

갑석 하단에는 1단의 부연이 있고 상면 중앙에는 초층탑신을 받치기 위한 호·각형의 2단 받침이 마련 되었으며,

이 석탑의 기단에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특징은,

단부쪽으로 갈수록 나타나는 급격한 기울기와 모서리에 나타나는 합각선의 표현과 과장된 귀솟음이 있습니다.

 

 

 

탑신은 3층으로 각 층 탑신석과 옥개석이 각각 1매씩 총 6매로 구성되어 있고,

탑신석은 각층 모두 네 모서리에 우주를 모각 하였으며 초층탑신 남면에는 양각으로 네모난 테두리를 둘러 문비를 마련 하였고,

문비 내부 중앙에는 좌우로 문고리를 부착했던 것으로 보이는 원공이 남아 있으며,

 

 

 

옥개석은 1·2층 탑신받침이 5단인 것에 비해 3층은 4단으로 축소 되었고,

상면의 탑신받침도 1·2층은 1단인데 비해 3층의 노반받침은 생략 되었으며,

옥개석의 낙수면은 기울기가 완만한 편이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전각부에서 합각선과 만나 강한 반전을 보이고 있으며,

각 옥개석 하단의 처마단부와 옥개받침 사이에는 물끊기 홈이 남아 있습니다.

 

 

 

상륜부는 노반과 복발이 남아 있어,

노반과 복발은 각각 따로 제작 되었는데 노반은 방형 육면체로 상단부에 1단의 돌림띠가 있고,

복발은 납작한 편구형으로 돌림띠 장식은 없고 중판 4엽의 연화문이 복련으로 처리 되었고,

노반이나 복발의 찰주공 여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석탑에서 나타나는 전체적인 표현 의지는,

전형양식의 구현에서 벗어난 부분적 기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느낌이며,

비록 상하층 기단에 2:2의 탱주가 나타나지만 하층기단 갑석의 변형과,

하층기단면석에 등장하는 안상의 부조는 9세기 이후 나타나는 신라석탑의 주요한 의장 중에 하나여서,

전체적인 조형기법과 세부의장을 조합해보면 9세기 중반경의 탑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석탑의 안쪽에는 5층 석탑의 형태를 조각한 화강암 석조물이 있어,

석조 조형물의 내용은 알수없으나 세운지 오래지 않아 보이고,

 

 

 

옆에는 가건물로 지어둔 작은 규모의 법당이 있어,

 

 

 

안에는 불상을 모셔 두었는데,

석불은 좌상으로 통견의 법의를 착용하였으며 수인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이 불상은 원래부터 이 탑과 연관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탑과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다만 이곳을 영가지(永嘉誌) 권6의 고적조(古蹟條)에 등장하는 부천사(富泉寺)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경북 안동으로의 문화재 탐방에서 찾은 석탑으로,

영남 북부지역의 지방화된 석탑양식을 보여주는 통일신라 중기 이후의 삼층석탑(三層石塔)으로,

체적 안정감과 통일성에 중점을 두는 8세기 석탑양식에서 벗어나,

세부적 장식성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통일신라 중기 이후의 지방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석탑으로,

경북 안동의 보물 문화재 평화동 삼층석탑(平和洞三層石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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