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희망리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으로,

괘석리사사자삼층석탑(掛石里四獅子三層石塔)과 희망리 삼층석탑(希望里三層石塔)을 찾았습니다.

 

괘석리사사자삼층석탑(掛石里四獅子三層石塔)과 희망리 삼층석탑(希望里三層石塔)은,

홍천군 홍천읍 희망리에 있는 "홍천미술관" 앞에 자리해있어,

홍천미술관은 1956년 홍천군청사로 사용 되었고 1986년부터 2007년까지 홍천읍사무소로 사용되다가,

"홍천미술관"으로 개관한 홍천의 근대문화유산 이기도 합니다.

 

 

 

2기의 석탑 옆에는 폐사지의 것들로 보이는 석물들이 놓여 있고,

 

 

 

괘석리사사자삼층석탑(掛石里四獅子三層石塔)과 희망리 삼층석탑(希望里三層石塔)은,

홍천미술관 앞에 나란히 함께 자리하고 있어, 

 

 

 

보물 제540호 홍천괘석리사사자삼층석탑(洪川掛石里四獅子三層石塔)으로,

높이 350㎝의 크기로 원래는 두촌면 괘석리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으로,

절터로 추정되는 원위치 일대에는 기와편만이 산재해 있었다고 하며,

 

 

 

석탑의 각 부에 약간의 파손이 있고 부분적으로 마멸 흔적이 보이나,

대체로 원형을 잘 간직한 완형으로 형태도 정연한 우수작으로,

조성 연대는 하층 기단 면석의 안상과 그 내면의 화문장식과,

상기(上基)의 4사자와 중앙부 연화좌 및 탑신부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 초기로 보여지며,

 

 

기단부 위에 탑신과 상륜부가 놓인 이 석탑은 상층 기단에 4좌의 석사자(石獅子)가 있어,

기단부는 상·하 2층으로 구성되었는데 하층 기단은 기대(基臺)가 면석·갑석 등이 1매의 석재로 조성되어 큼직한 일판석(一板石)으로 이루어 졌으며,

기대는 하단부에 높직하게 각출하고 다시 그 위에 낮은 각형의 굄으로 면석을 받치게 되었는데,

각 면에는 2구의 안상(眼象)이 오목새김되었으며 안상 내에는 다시 삼산형(三山形)의 귀꽃처럼 꽃모양이 조식 되었고,

갑석은 면석 상단에 굽을 돌려서 새겼는데 이러한 형식은 고려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것 이기도 합니다.

 

 

 

4좌의 석사자(石獅子) 중앙에는 하갑석 상면과 상갑석 하면에 각각 원좌(圓座) 주변에 8엽의 연화문을 새긴 연화좌를 마련 하였는데,

이러한 시설로 보아 다른 사자탑에서와 같이 불상이나 승상(僧像) 등을 1구 안치 하였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석을 각 1석씩으로 만들어 겹쳐 쌓아놓았는데 각 옥신에는 양 우주가 정연히 각출 되었고,

각 층의 옥개석은 같은 형식인데 하면에는 각형의 받침이 3단씩으로 마련 되었으나,

 

 

 

상면에는 신석(身石) 굄을 조각하지 않고 평평한 정상(頂上) 위에 옥신석을 받치고 있으며,

낙수면(落水面)이 평박한 편이며 네 귀퉁이의 전각에 반전이 있어서 경쾌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사자상으로 상층기단을 대신한 이형석탑이며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전통을 계승하여 고려시대에 조성된 예로 알려져 있으며,

 

 

 

탑신부는 갑석 위로 2단의 굄대를 두어 받치게 했으며 굄대 하단은 마치 갑석처럼 되어 있습니다.

 

 

 

괘석리사사자삼층석탑(掛石里四獅子三層石塔)의 옥신과 옥개가 각각 하나의 돌로 조성된 탑신부는 파손이 심하며,

2·3층의 옥신석은 없어 졌으며 옥개받침은 모두 3단이며 낙수면은 완만하고 모서리가 약간 반전되어 있으며,

상륜부는 모두 없어지고 노반석만이 탑 정상에 남아 있는데 그 형식은 일반적인 양식을 보이고 있습니다.

 

 

 

홍천괘석리사사자삼층석탑(洪川掛石里四獅子三層石塔)은,

상층 기단에 4좌의 석사자(石獅子)는 연화좌 위에 앉아 있고 목에는 2줄의 장식선이 있으며,

빈신사지(頻迅寺址) 석탑의 사자와 비교해 체구가 세장한 편이나,

마멸로 인하여 세부의 조각솜씨를 자세히 알 수는 없으며,

파손이 있고 마멸이 있으나 안정감 있는 고려 초기의 보물 문화재 석탑 입니다.

 

 

사사자삼층석탑 옆에는 "희망리 삼층석탑(希望里三層石塔)"이 있어,

보물 제79호로 지정된 높이 3m의 석탑으로 상륜부와 3층 탑신석이 유실된 일반형 삼층 석탑으로,

지대석은 새 부재가 일부 보충된 4매의 장대석으로 조성 되었고 기단부에서 단층으로 2매의 판석으로 이루어진 하대석은 위에 약간의 경사를 주었으며,

중앙에 1단의 얕은 괴임을 두어 면석을 받치고 있으며 면석은 4매의 판석으로 결구되었는데,

2매의 판석을 세운 뒤 2매의 판석을 사이에 감입하여 2면은 우주와 탱주를 모각하고 2면은 양면의 측면을 우주로 삼고 탱주만 모각 하였습니다.

널찍한 갑석은 하단에 내만된 경사로 표현된 1단의 괴임이 있으며 윗면에도 경사와 합각이 표현되어 있고,

중앙에 약간 높은 3단의 얕은 괴임과 초층 탑신이 한 돌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희망리 삼층석탑(希望里三層石塔)은,

일제강점기인 1934년 5월 1일 보물 제121호로 지정 되었으며,

1949년 4월 당시 원 위치인 희망리홍천초등학교 뒤편 희망리 311-4에서 교육청으로 이전 되었고,

1957년 6월 15일 다시 현 위치인 홍천군청으로 옮겨 놓았으며,

2000년에 석탑 주변을 정비하고 2012년 보존처리공사를 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는 보물 제79호 문화재 입니다.

 

 

 

석탑은 기단부에 비해 탑신부가 크게 감축되어 있고 탑신의 하단이 상단에 비해 좁아지고 있는데,

원 위치의 모습은 기단 면석 이하가 묻혀 있고 3층 옥개석이 이상이 없었으나,

여러 차례의 이전과 도괴, 보수를 통한 현재의 모습은 단층 기단에 3층 탑신이 없는 상태로 남아 있으며,

아래층 옥개석과 위층 탑신석이 1매로 조성되었으며 옥개석 상단에는 지붕의 반전이 표현되어 있고,

탑신부 비중의 약화, 경사지게 감축되는 2층 탑신, 옥개석 상단의 지붕 반곡, 상, 하층의 옥개석과 탑신석의 1매 조성 등은,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양식으로 고려 중, 후기 조성되는 석탑의 지방적 전개 양상으로 볼 수 있으며,

 

 

 

탑신은 초층이 기단 갑석과 한 돌이며 2층 탑신은 초층 옥개석과 한 돌로 만들어져 있으며,

옥개석은 층급이 초층은 4단이고 2, 3층은 3단이며 추녀는 양단이 살짝 반전하고 있고,

각 옥개석 상단에는 1단의 낮은 괴임이 조출되어 있으며 2, 3층은 괴임과 낮은 1단이 더 조성되어 있습니다.

2층 탑신 높이는 초층에 비해 크게 감축되어 있으며 폭은 밑변은 동일하나 2층 탑신의 폭이 상단으로 갈수록 경사로 줄어들고 있고,

2, 3층 옥개석 상단 괴임부는 처마와 같이 반전을 표시하고 있어 지붕의 굴곡을 함께 표시하고 있으며,

2층 탑신과 3층 옥개석은 별석으로 조성된 듯 현재 3층 탑신은 유실되고 3층 옥개석만 남아 있어,

지붕돌이 두껍지는 않지만 네 귀퉁이 끝부분의 치켜올림이 적어서 날렵한 느낌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희망리 삼층석탑(希望里三層石塔)의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으며,

3층 옥개석 상부에 방형의 찰주공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희망리 삼층석탑(希望里三層石塔)은 전체적으로 넓고 높직한 크기에 비하여,

탑신부가 빈약한 편이며 상하 비례가 맞지 않으며,

각 부의 조각에 있어서도 약화된 모습이 보여 고려 중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강원도 홍천 에서의 문화재 탐방에서 찾은곳으로,

서로 다른 유형인 고려시대 석탑의 모습을 살필수 있으며,

보물 문화재로 지정 되어있는 2기의 석탑을 볼수 있었던 곳으로,

홍천 군청의 홍천미술관 앞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근에 희망리 당간지주가 있어 함께 찾아 볼만한 곳으로

괘석리사사자삼층석탑(掛石里四獅子三層石塔)과 희망리 삼층석탑(希望里三層石塔)의 방문기 입니다.


"희망리 당간지주"에 관한 내용은 아래에서 찾으실수 있습니다.

홍천의 문화재, 희망리 당간지주(希望里 幢竿支柱)_19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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