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객사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객사인 "팽성읍 객사(彭城邑客舍)"를 찾았습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7호로 지정된 팽성읍 객사(彭城邑客舍)로,

팽성읍 객사는 조선시대 팽성현의 객사(客舍)로 객관(客館) 이라고도 하며,

 

 

 

팽성현의 객사(客舍)는 1279년(고려 충렬왕 5년)에 있었다고 하나,

사신이 묵은 것은 고려 초부터라고 할 수 있으며,

조선조에 들어 1488년(성종 19)에 지어졌으며 현종(1659~1674) 때 현감 심익선이 크게 중창하였고,

1700년(숙종 26)과 1760년(영조 36)에 중수 하였고,

현존 건물의 망새기와에서 1801년(순조 1)에 해당하는 명문이 발견되어 다시 중수한 것으로 추정되며,

일제강점기에는 일반인에게 매각되어 양조장이 들어섰고,

1970~80년대 들어 주택으로 사용되던 것을 1995년에 해체 수리하여 옛 모습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객사(客舍)의 문간채는 10칸 규모의 민도리집이며,

대문간채의 중앙에 1칸의 대문이 있는데 솟을지붕으로 꾸몄고,

중대청과 대문의 지붕 용마루 양끝에는 용두(龍頭)를 올려놓아 관리청으로서의 위엄을 나타 내었습니다.

 

 

 

다녀보면 일반적으로 객사는 개방이 되어 있는데,

이곳은 문을 닫아두고 관리하고 있는듯 하여 들어 갈수가 없고,

 

 

 

문간채 앞에서 말리고 있는 표고버섯만 물끄러미 바라다 보아야 합니다.

 

 

 

하는수 없이 문틈과 담장 너머로 볼수밖에 없어,

객사는 지방 관아의 중심 건물로 고을 수령이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殿牌, 闕牌)를 놓고,

임금에게 예를 올리는 망궐례(望闕禮)를 행하는 곳이며 중앙에서 관리가 내려오면 숙소로 사용하던 시설로,

본사(本舍)를 중심으로 좌우에 익사(翼舍)를 두고 앞면에는 내(內)·중(中)·외(外) 3문이 있으며,

옆에 아영청(亞營廳)·무신사(武臣祠) 등 부속건물을 두었다고 하며 본사는 기와와 돌을 깔고 좌우의 익실은 온돌을 두었습니다.

 

 

 

팽성읍객사의 정청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익공계 맞배지붕으로 전면에 개방된 퇴칸이 있고 내부 바닥에는 전돌을 깔았으며,

정청은 자연석 주춧돌 위에 둥근 기둥을 세우고 초익공을 결구한 겹처마의 맞배지붕으로 지어지고,

지붕 위 용마루의 양 끝에는 물고기 꼬리 모양의 장식인 치미(鴟尾)를 올리고 있어 위엄을 나타내고 있으며,

지붕이 한 단 낮게 지어진 동헌과 서헌은 민도리집에 맞배지붕으로 자리해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평택현은 전국 330여 개 중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어서 본래 객사도 작고 초라 했었다고 하며,

조선후기 현종(1659~1674)때 다시 크게 지었고 영조(1760년)와 순조(1801년) 때 중수하여 일제강점기까지 유지 되었으며,

전국의 객사 중에서 가장 평균적이고 평범한 모습의 객사(客舍)입니다.

 

 

 

지금의 팽성읍은 평택의 중심에서 멀어져 있지만,

옛 팽성읍 관아시설과 평택향교가 남아 있어 평택현의 읍치구역 였던 곳이며,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객사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곳으로,

경기도 평택의 문화재인 "팽성읍 객사(彭城邑客舍)"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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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평택시 팽성읍 객사리 117 | 팽성읍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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