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하회마을에 있는,

염행당 고택(念行堂 古宅)을 찾았습니다.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류씨의 동족 마을로 빼어난 자연 경관과 민속 전통·유교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는 조선시대 양반촌으로,

그중 안동 하회마을 염행당 고택(念行堂 古宅)은 보물 제 414호인 충효당(忠孝堂)과 함께 하회  남촌(南村)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하회마을의 안내도를 통하여 남쪽에 있는 염행당 고택(念行堂 古宅)의 위치를 보아 둡니다.

 

 

 

안동 하회마을 염행당 고택(安東河回─念行堂古宅)은 국가민속문화재 제9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하회 남촌택(河回 南村宅)으로 불리기도 하며,

 

 

 

대문간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으로 남향 하였는데,

서측 2칸이 광이고 마루방 1칸을 그리고 대문간 1칸을 두고 다시 광 3칸이 연달아 있으며 문간만은 지붕을 한층 높여 솟을대문으로 하였고,

대문을 들어서면 전면 북쪽터가 옛 몸채터로 주초들이 남아 있고 왼쪽으로 복원된 정자가 있어,

 

 

 

염행당 고택(念行堂 古宅)은 1797년(정조 1) 류기영의 조부인 대사간 류치목이 건립 하였으며,

주일대사를 지낸 류태하(柳泰夏)의 고택으로 조선 후기 형조좌랑을 지낸 류기영(柳驥榮, 1825~1880)의 가옥으로,

건립 당시에는 대문채, 몸채, 별당, 사당이 있는 전형적인 시대가의 양반 주택였으나,

1953년 화재로 몸채와 정자가 타 버려 지금은 별당채를 주생활 공간으로 쓰고 있고 정자는 복원 하였는데,

30여 년 전 인근에 있던 정자 건물인 백률원(百栗圓)을 이건한 "ㄱ"자형 건물로 부엌, 방, 대청으로 이루어 졌으며,

부엌 상부는 안방에 이어진 다락(누마루)으로 꾸며져 있는데 구성 수법이 별당과 매우 흡사 합니다.

 

 

 

몸채가 안채와 사랑채의 구들 연기를 하나의 큰 굴뚝으로 뽑아낼 정도로 잘 지어진 건물 였다고 하며,

현재는 굴뚝만이 그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고 하나 소실된 안채쪽으로 들어가는 문은 닫혀있어 볼수 없고,

 

 

 

몸채의 오른쪽에 뒷담이 있고 일각문이 있어,

 

 

 

몸채 뒤편의 일각문을 지나면,

 

 

 

정면 북쪽으로 따로 쌓은 담장 속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사당채가 있어,

사당은 정침의 우측 후면에 담을 둘러 별도의 공간을 확보 하였는데,

전면에 이중으로 담과 문을 두어 사당으로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엄숙함을 더하게 하고 있으며,

 

 

 

몸채 뒤편과 사당의 담장은,

담의 하부에는 막돌을 쌓았으나 상부에는 기와로 문양을 넣어 간략하나마 장식을 하여 격식을 올렸는데,

공을 들여 정성스럽게 쌓은 사대부가의 위엄을 느낄수 있게 합니다.

 

 

 

몸채 뒷담의 일각문을 들어서면 동쪽으로 나있는 일각문을 들어서면 별당채가 동북향으로 자리잡고 있어,

별당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 팔작지붕의  "一"자형 가옥으로,

남측에 부엌 1칸과 북쪽으로 온돌방 2칸, 마루방 1칸을 두었으며,

 

 

 

별당은 남단이 부엌이고 가운데 2칸은 온돌을 북쪽 1칸은 대청으로,

원래는 부엌 없이 커다란 대청이 있는 접객 전용 공간이었으나 생활 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개조한 것으로,

부엌은 아궁이만 시설하고 상부는 누마루였던 것을 지금은 하부에 벽체를 시설하여 누마루는 안방 다락이 되었고,

부엌 벽체는 기와 편으로 문자와 그림을 넣어 장식 하였습니다.

 

 

 

별당 앞마당에는 장방형의 작은 연못을 두고 주위에 화초를 심었으며,

 

 

 

별당채는 막돌허튼층쌓기의 기단을 콘크리트로 마감하고,

막돌초석을 놓아 네모기둥들을 세웠는데,

전면 양 우주만이 두리기둥이며 도리는 굴도리이고 3량가구(三梁架構)로서 홑처마 팔작지붕이며,

 

 

 

앞에서 보아 오른쪽의 한칸은 마루방으로 되어 있고,

마루방과 온돌방 사이에는 넌출문인 분합문(分閤門)을 두었으며,

 

 

 

2칸의 방은 하나로 트여 있고,

안쪽에는 부엌위의 다락이 보이고 뒤쪽의 작은 고방으로도 연결되어 있으며,

 

 

 

2칸의 온돌방의 벽과 문짝에는,

시(詩)와 함께 그림들이 그려져 있어 눈길이 가며,

 

 

방과 마루가 만나는 곳에는 마루나 방 앞에 설치하여 접어서 들어 열수있게 만든 큰 문인 사분합문(四分閤門)을 두어,

필요시 하나의 공간으로 사용할수 있도록 해 두었습니다.

 

 

 

조선 후기 형조좌랑을 지낸 류기영(柳驥榮, 1825~1880)지었으나,

1953년 화재로 몸채와 정자가 소실 되었고 대문채와사당채, 별당채만 남아 있으나,

사람이 기거할수 있는곳은 별당채만 남은것이 되었습니다.

 

 

 

부엌 뒤편에 있는 벽체의 모습으로,

벽면에 기와 편으로 문양을 넣고 회를 발라 정성을 더한 모습이 들어오고,

 

 

 

뒤편에 아궁이만 있는 작은 부엌도 들여다 봅니다.

 

 

 

충효당(忠孝堂)과 함께 하회  남촌(南村)을 대표하는 건축물 였으나,

화재로 몸채와 정자가 소실되어 정자는 복원 하였으나,

안채가있는 몸채가 없는 고택(古宅)으로 남게되어 아쉬움이 있는곳으로,

남촌택(南村宅)으로도 불리는 안동 하회마을의 염행당 고택(念行堂 古宅)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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