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노루목에 있는,

김삿갓 유적지를 찾았습니다.

 

난고 김삿갓 유적지가 있는 이곳은,

차령산맥과 소백산맥 준령의 북단과 남단에 위치하며,

경북 영주시와 충북 단양군과 경계를 이루는 3도 접경지역으로,

산맥의 형상이 노루가 엎드려 있는 듯한 모습이라 하여 "노루목"이라 불려오고 있는곳 입니다.

 

 

 

 

김삿갓 계곡캠핑장 옆의 주차장 한켠에는,

2003년 10월에 개관한 "난고 김삿갓 문학관"이 자리해 있어,

이곳을 먼저 들러봅니다.

 

 

 

 

김삿갓 문학관은 매표소에서 표를 구매해야 입장할수 있으며,

 

 

 

난고 김삿갓 문학관을 들어서면 보이는 1층 로비의 모습이며,

 

 

 

 

로비의 한쪽에는 의자와 함께,

김삿갓의 조형물을 두어 기념사진을 남길수 있고,

 

 

 

 

 

난고 김삿갓 문학관은,

김삿갓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난고 김병연의 생애와 발자취를 쫒아 일생을 바친 정암 박영국 옹의 김삿갓 연구자료가 전시되어 있고,

다양한 김삿갓 관련자료들을 살펴볼수 있는데,

 

 

 

 

 

김삿갓이라는 이름이 있게한 삿갓과 짚신을 찾을수 있고,

 

 

 

 

전시실에는 두권의 책이 진열되어 있어,

김삿갓의 걸식 12수, 인물 24수, 산천누정 24수 등을 수록한 시집인 "김립시집"으로,

김립은 김삿갓의 별명이며,

김삿갓을 찾아볼수있는 "대동기문"이란 책으로,

대동기문은 조선 태조 때부터 고종 때까지 역대 인물들의 전기·일화 등을 엮은 책 입니다.

 

 

 

 

1층에서 나와,

계단을 따라 2층의 전시실로 올라가면,

 

 

 

 

2층의 전시실은,

민중시인으로서의 김삿갓에 대한 이야기를 전시하고 있어,

 

 

 

 

민중속에서 해학과 더불어 많은 시(詩)를 남겼으며,

 

 

 

 

근대에 와서도 김삿갓에 대한 많은 책들이 쓰여 졌슴을 볼수있고,

 

 

 

 

1950년대에 명국환이 불러서 인기를 모은 노래인 "방랑시인 김삿갓"도,

레코드를 통해서 볼수 있습니다.

 

 

 

 

한쪽에 마련된 영상실에서는,

난고(蘭皐) 김병연(金炳淵)의 생애를 영상으로 만날수 있으며,

 

 

 

 

"김삿갓 프로젝트"실이 따로 있어 들여다보니,

 

 

 

 

김삿갓의 행적을 표현한듯한 조형물에 눈길이 갑니다.

 

 

 

 

김삿갓의 방랑의 삶을,

짚신 등의 조형물로 표현해둔듯 여겨지며,

 

 

 

 

이곳에서도 김삿갓과 관련한 노래들을 들여다 볼수 있습니다.

 

 

김삿갓 문학관에서 개천을 건너면,

김삿갓 유적지로 들어가는 길이 안내문을 통해 쉽게 찾을수 있으며,

 

 

 

 

이곳에는 김삿갓의 시비(詩碑)들이 자리하고 있어,

 

 

 

 

겨우 13살에 장가를 든 꼬마신랑을 놀려먹는 시(詩)인 김삿갓의 "꼬마신랑"도 보이고,

 

 

 

 

명천으로 표현된 "길주명천(吉州明川)"으로,

吉州吉州不吉州(길주길주불길주)  길주 길주 하지만 길하지 않은 고장

許可許可不許可(허가허가불허가)  허가 허가 하지만 허가하는 것은 없네

明川明川人不明(명천명천인불명)  명천 명천 하지만 사람은 밝지 못하고

漁佃漁佃食無漁(어전어전식무어)  어전 어전 하지만 밥상에는 고기 없네

 

어전(漁佃)은 함경도 명천군 기남면 어전리이고,

길주(吉州)는 나그네를 재워주지 않는 풍속이 있어 허가가 많이 살지만 잠자도록 허가해 주지 않고,

어전(漁佃)은 물고기 잡고 짐승을 사냥한다는 뜻인데 이 동네 밥상에는 고기가 오르지 않음을 풍자한 시(詩)입니다.

 

 

 

 

김삿갓의 시(詩) 환갑연(還甲宴) 입니다.

彼坐老人不似人(피좌노인불사인) 저기 앉은 저 노인은 사람 같지 않으니

疑是天上降眞仙(의시천상강진선) 아마도 하늘 위에서 내려온 신선일 테지

其中七子皆爲盜(기중칠자개위도) 여기 있는 일곱 아들은 모두 도둑놈이니

偸得碧桃獻壽筵(투득벽도헌수연) 서왕모의 선도 복숭아를 훔쳐다 환갑 잔치에 바쳤네

 

환갑 잔치집에 들린 김삿갓이 첫 구절을 읊자 자식들이 모두 화를 내다가,

둘째 구절을 읊자 모두들 좋아 하였고,

셋째 구절을 읊자 다시 화를 냈는데,

넷째 구절을 읊자 역시 모두들 좋아 하였다고 합니다.

"서왕모의 선도 복숭아"는 천 년에 한번 열리는 복숭아로,

이것을 먹으면 장수 하였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

 

 

 

 

유적지의 물을 마시는 음수대에는,

김삿갓이 내어주는듯 조형물을 세워두어 눈길이 가며,

 

 

 

 

이제 김삿갓 유적지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왼쪽의 산길을 잡으면 복원해둔 "김삿갓 생가"를 찾을수 있는데,

이곳에서 산길을 1.8km 정도 걸어가야 합니다.

 

 

 

 

갈림길의 한쪽에는,

사당으로 보이는 한칸 규모의 건물이 있어,

 

 

 

 

입구에는 금줄과 함께 편액도 걸어 두었는데,

글씨가 희미해서 내용은 알수 없으나,

 

 

 

 

내부에는 갓이 걸려있고,

위패가 놓여있어 김삿갓을 위한 작은 사당으로 여겨 집니다.

 

 

 

 

사당의 오른쪽에는 김삿갓의 묘가 있어,

난고(蘭皐) 김병연(金炳淵, 1807~1863)은 원래 전라도 동복(지금의 전라도 화순군)에서 돌아 갔지만,

아버지를 찾아 전국을 떠돌던 둘째 아들 익균이 찾아내어,

주거지인 하동면 노루목 바로 이 곳 골짜기에 묻어 주었으며,

그의 묘소는 1982년 영월의 향토사학자 정암 박영국의 노력으로 처음으로 발견 되었습니다.

 

 

 

 

난고(蘭皐) 김병연(金炳淵, 1807~1863)의 묘는,

파란만장 했던 그의 일생을 대변하듯,

묘비와 상석, 망두석까지 모두 자연석으로 세워 두었는데,

이 또한 근대에 와서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것으로 여겨집니다.

 

 

 

 

김삿갓의 본명은 병연(炳淵), 호는 난고(蘭皐)이며,

1807년(순조7년)3월 13일 경기도 양주군 회동면에서 출생한 김삿갓은,

6세 때 조부 김익순이 선천부사로 있다가 홍경래 난을 진압하지 못하고 오히려 투항한 것과 관련하여 폐족을 당한 후,

황해도 곡산, 경기도 가평, 광주, 강원도 평창등을 전전하다,

영월 삼옥리(三玉里)에 숨어 정착하여 화전을 일구며 살게 되었는데,

 

 

 

 

조부의 행적을 모르고 자랐던 김삿갓은,

20세 때 영월동헌에서 열리는 백일장에서 “홍경래난 때, 순절한 가산 군수 정공의 충절을 찬양하고,

항복한 김익순을 규탄하라.”(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는 시험 제목의 향시(鄕試)에서 장원을 했으나,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로부터 김익순이 조부라는 것을 알게 되자,

조상을 욕되게 하여 하늘을 쳐다 볼 수 없다고 삿갓을 쓰고 방랑생활을 하며 벼슬길을 포기 하였고.

그후 김삿갓은 57세로 객사할 때까지 전국 각지를 떠돌아 다니면서 방랑 걸식 하였습니다.

 

 

 

 

그런 삶을 살았던 감삿갓이,

지친 몸으로 말년에 들른 곳이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 였는데,

그곳 명소 "적벽(赤璧)"에 매료되어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이 곳 동복에서 생을 마감 하였으며,

훗날 그의 차남이 영월 고향 땅으로 이장하여 이곳 김삿갓묘에 안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강원도 최남단에 자리한 영월군 김삿갓면에서 찾은 유적지로,

우리에게는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시를 남긴 기행의 방랑시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후기에 파란만장 삶을 살았던 난고(蘭皐) 김병연(金炳淵)의 생을 되돌아 볼수 있는곳으로,

영월의 "난고 김삿갓 유적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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