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에 있는,

통일신라의 사찰터인 장항리사지(獐項里寺址)를 찾았습니다.

 

장항리사지(獐項里寺址) 사적 제4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절터는 토함산(吐含山) 석굴암에서 동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좌우에 계곡을 끼고 있는 낮은 대지에 자리하고 있은데,

이 계곡은 감은사(感恩寺) 앞을 지나 동해로 흐르는 대종천(大鐘川)의 상류이기도 합니다.

 

 

 

 

경주 장항리사지는 비교적 외진곳에 자리하고 있어,

양북면에서 토함산 자연휴양림으로 오르는길에 작은 간이 주차장이 있고,

 

 

 

 

주차장에는 장항리사지의 위치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어,

표지판이 없으면 쉽게 찾을수도 없을듯 합니다.

 

 

 

 

표지를 따라 주차장 아래로 내려가면,

탑정천을 건널수 있는 작은 다리를 건너게 되고,

 

 

 

 

축대와 함께 위로 오를수 있는 계단이 있어 오르면,

 

 

 

 

사적 제45호 경주 장항리사지(獐項里寺址)를만나게 되는데,

가파른 계곡 위쪽에 위치한 절터에는 5층석탑인 서탑과 파괴된 동탑, 석조 불대좌(佛臺座) 등이 남아 있으며,

 

 

 

 

장항리사지(獐項里寺址)에는,

국보 제236호로 지정된 경주 장항리 서 오층석탑(慶州 獐項里 西 五層石塔)이 서탑(西塔)으로 남아있어,

동탑(東塔)은 파괴되어 인근 계곡에 흩어져있던 석재들을 수습하여 1932년에 복원하였습니다.

 

 

 

 

석탑은 주변에서 산출되는 밝은 계통의 담백색 화강암을 사용하여 만들었는데,

전형적인 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층수에 있어 오층을 유지한 점이 특이하며,

기단부는 이중기단으로 상하층 모두 몇 개의 판석으로 면석이 구성 되었고,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이 각각 1매로 되어 있는데,

1929년 조사 당시 이곳 초층탑신 상면에서 사리를 봉안했던 사리공이 확인 되었고,

2층부터 탑신의 높이는 현저히 낮아졌으며 급격한 체감을 나타내며 모두 모서리에 우주가 모각되어 있으며,

옥개석은 모두 하단에 5단의 층급받침을 두었고 상단에는 2단의 받침을 두어 위층의 탑신을 받치고 있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모서리에서 반전을 보이고 있으며,

옥개석 처마 하단에 물끊기 홈은 생략되었으며 합각선 모서리에 1개,

전각부 양쪽에 각각 2개씩, 총 5개씩의 풍경공이 뚫려 있습니다.

 

 

 

 

초층탑신 네 면 모두 중앙에 직사각형의 문비를 새기고,

중앙에는 괴수형 문고리를 조각하여 장식성을 높였으나 중앙에 문짝 분할선은 생략하였고,

문비 양쪽에는 우주와 맞물려 조각된 금강역사가 있는데,

연꽃을 밟고 서 있는 입상으로 각각 손에 무구(武具)를 쥐고 권법의 자세를 취하고 있어,

크기는 작지만 매우 정교하면서도 위엄 있는 자세로 뛰어난 조각수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탑의 상륜부는 노반을 제외하고 모두 결실된 상태인데,

노반은 방형의 육면체로 상단에는 원형의 찰주공이 있으며 2단의 돌출대를 두어 안정감을 주고 있습니다.

 

 

 

 

초층탑신에 새겨진 금강역사상은,

불교조각사 및 도상해석학 연구에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

1층 몸돌 4면(面)에 도깨비(鬼面)형태의 쇠고리가 장식된 2짝 씩의 문을 조각하고,

그 좌우에는 연꽃 모양대좌(蓮華臺座) 위에 서있는 인왕상(仁王像)을 정교하게 새기는 등,

희귀한 수법을 보여 주고 있어 조각 수법으로 보아 8세기의 걸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서탑은 일제시대에 도굴범이 탑 속에 들어 있는 보물을 훔치기 위해 폭파시켜 파괴한 것을 수습하여 다시 세웠고,

동탑은 계곡에 흩어져 있던 것들을 절터에 모아두고 있는데,

 

 

 

 

모아서 세워둔 동탑의 탑신부에도 서탑과 같이,

금강역사상 등의 조각을 볼수 있습니다.

 

 

 

 

이곳은 절터에 있었던 절의 이름을 정확히 알지 못하므로,

지명인 장항리를 따서 장항리사지라고 불리는데,

다만 장항사(獐項寺)라고 불린 절이 있었기 때문에 주변의 이름을 장항리라고 하였는지는 알수 없습니다.

 

 

 

 

석탑의 동편에 땅 위에 드러나 있는 건물터는 불상을 모셨던 금당(金堂) 자리로 보이며,

불대좌는 이 건물터의 중앙에 마련되어 있는데,

건물의 받침 규모는 동서 15.8m, 남북 12.7m로,

남아 있는 주춧돌을 볼 때 정면과 측면이 각각 3칸인 그다지 크지 않은 규모의 금당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금당터 에는 석조불대좌가 남아있는데,

크기는 아래 부분이 높이 0.6m에 최대 지름 2.4m이며,

윗 부분은 높이 0.53m에 지름이 1.84m의 크기이며,

 

 

 

 

석조 불대좌는 위아래가 각각 다른 돌로 만들어졌는데,

윗 부분은 연꽃을 조각한 원형 연화대좌(蓮花臺座)이고,

 

 

 

 

대좌의 아래 부분은,

측면의 안상(眼象) 속에 신장(神將)과 신수(神獸)를 조각한 팔각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위에 놓여있던 석불입상(石佛立像)은,

1932년에 서탑을 복원할 때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져 현재 북쪽 뜰에 전시되어 있는데,

여러 조각으로 파손되었던 것을 복원하였지만 뒷부분의 광배(光背) 일부와 무릎 아래는 없어진 상태이며,

머리와 얼굴의 모습, 광배의 화불(化佛) 등을 새긴 수법을 볼 때 8세기 경에 만들어진 여래입상(如來立像)으로 판단되며,

현재의 높이는 3m이지만 실제로는 4m 이상인 큰 불상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찾아보기 힘든 통일신라시대 유일의 오층쌍탑이며,

서탑의 위치를 볼 때 금당 앞에 탑이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금당의 좌우측에 탑이 위치하고 있어,

일반적인 가람배치와 다른 특이함을 보이고 있는 곳으로,

경주의 유적지인 "장항리사지(獐項里寺址)" 방문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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