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보길도 여행에서,

명승 제34호 이며 "보길도 윤선도의 원림(甫吉島 尹善道 園林)" 가운데,

윤선도가 구현한 선경인 "동천석실(洞天石室)'에 올라봅니다.

 

보길도 윤선도의 원림(甫吉島 尹善道 園林)에서의,

동천석실(洞天石室)은 하늘과 연결되는 윤선도의 서재인 격이며,

 

 

 

 

보길도 여행에서 세연정에서 부용리 쪽으로 약 1.5㎞쯤 들어가면,

낙서재(樂書齋) 건너편 산비탈에 동천석실(洞天石室)이 자리하고 있어,

이곳은 1,000여평의 공간으로,

석문(石門)·석담(石潭)·석천(石泉)·석폭(石瀑)·석대(石臺)·희황교(羲皇橋) 등의 유적이 남아 있는데,

 

 

 

 

낙서재(樂書齋)와 마주하고 있는 동천석실(洞天石室)을찾으려면,

부황리에서 부황천을 건너는 작은 다리를 건너야 하며,

 

 

 

 

동백나무 숲길을 따라서 오르막을 300m 이상을 올라야 하는데,

대략 20여분 이면 거뜬이 오를수 있어,

 

 

 

오르는 길은 주로 동백숲여서 그리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으며,

 

 

 

 

마침내 낙서재 북쪽에 있는 해발 252m 높이 구릉의 중간지점인,

해발고도 120m에 위치하고 있는 "동천석실(洞天石室)"을 만나게 됩니다.

 

 

 

 

동천석실로 들어가는 길에는,

400년전에 산 중턱에 바위를 깍아 작은 연못을 만들어,

암벽사이에서 솟아나는 석간수를 모았다고 하는 "석담(石潭)'을 만날수 있고,

 

 

 

 

멀리 조망하기도 좋은 커다란 바위를 만나기도 하는데,

 

 

 

 

동천석실로 오르는 마지막 길은,

오르막이 가팔라서 오르기 편하게 밧줄도 매어 두었으며,

 

 

 

 

암석사이에 작은 축대와 함께 동천석실(洞天石室)이 모습을 보여 줍니다.

 

 

 

 

커다란 바위들을 뒤에 두고 작은터에 자리한 동천석실로,

 

 

 

 

석실 옆에는 도르래를 걸었다는 "용두암"을 볼수 있어,

 

 

 

 

"용두"는 도르레의 방언으로,

동천석실 앞 바위와 낙서재를 연결하는 동아줄을 걸어 통속에 음식물 등을 넣어 날랐다고 전하는데,

건너편 산아래의 "낙서재"의 모습이 바로 들어 옵니다.

 

 

 

 

휴식과 독서를 위해 건너편 산허리의 바위 위에 집을 마련한 "동천석실(洞天石室)"로,

동천석실은 주자학에서 신선이 산다는 선계세상의 의미이며,

부용동을 한눈에 굽어 볼수 있으며 낙서재의 정면에 바라보이는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으며,

 

 

 

 

고산 윤선도가 동천석실(洞天石室)이라 한 것은,
"서책을 즐기며 신선처럼 소요하는 은자의 처소"라는 뜻으로 이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석실앞 작은 디딤돌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가 보면,

 

 

 

1칸 규모의 동천석실은 북쪽을 제외하고 삼면은 문이나 창문을 내어두어,

주변의 경관을 보기쉽게 해둔듯 하고,

바닥은 마루방으로 되어 있어 서재의 역활로 보여지며,

 

 

 

 

동천석실(洞天石室)에서 밖을 내어다 보면,

왼쪽에는 동리 입구인 세연정(洗然亭) 주변이 내려다 보이고,

 

 

 

 

정면의 창으로는,

윗쪽으로는 보길도 윤선도의 원림(尹善道 園林)의 세 구역중 하나로,

거처하는 살림집이 있는 윤선도의 낙서재(樂書齋)와 그 아래에 있는 곡수당(曲水堂)이 들어오고,

 

 

 

 

오른쪽으로는 보길 저수지 아래 부황리의 전경이 내려다 보입니다.

 

 

 

 

동천석실의 자그마한 마당 한켠에는 선돌을 세워 두었는데,

아마도 후대에 와서 세워둔듯 하고,

 

 

 

 

석실에서 내려다보면 침실이 보여 내려가 보기로 합니다.

 

 

 

 

한쪽에는 마치 성을 쌓은듯,

돌을 이용해 세워둔 구조물도 눈에 들어오고,

 

 

 

 

안내문이 있는 바위가 있어 다가가 보니,

차를 끊여 마셨다는 "차바위"가 자리하고 있어,

 

 

 

 

차바위 주변으로는 야생의 차가 바위틈 곳곳에서 자라고 있고,

 

 

 

 

바위 아래에는 용도를 알수없는 쇠 구조물도 보이고,

 

 

 

 

올라 앉아 있으면 차를 마시기 편하고 전망이 좋은 바위도 볼수 있습니다.

 

 

 

 

석문에 있는 두어칸 되는 반석(盤石)에는,

다도(茶道)를 즐기던 흔적이 있고,

그 주위로는 건물터가 복원되어 있어,

윤선도는 이곳을 부용동(芙蓉洞) 제일의 절승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침실로 내려오는길에는,

여러가지 모양의 바위들을 만날수 있어,

이들을 살펴 보는것도 또다른 재미가 있으며,

 

 

 

 

동천석실에서 20여미터 아래에 있는 정자형 침실을 만나게 되는데,

 

 

 

 

침실은 1칸의 작은 규모로,

1개의 문과 1개의 창을 내어두고 있는데,

 

 

 

 

문의 입구 위에는 "침실(寢室)"임을 알려주는 편액이 올려져 있고,

 

 

 

 

문을 열고 침실 안을 들여다 봅니다.

 

 

 

 

침실은 1칸의 작은 규모이지만 바닥에는 온돌이 놓여 있어,
해 저물면 이곳으로 내려와 작은 침실에서 잠을 청하고,
추운날에는 아궁이에 불을 넣고 잠시 쉬었으리라 추정해 봅니다.

 

 

 

 

침실에서 나와 윗쪽으로 보이는 동천석실을 올려다 봅니다.

 

 

 

 

침실의 아궁이는,

석축 아래로 멀리 이격되어 있는데,

 

 

 

 

불을 넣는 아궁이가 축대 아래에 자리하고 있어서 눈길이 가는데,

처음에 침실을 지으면서 설치해둔 것으로 보여,

특이하게 여겨 지는데 그 이유는 알수 없습니다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동천석실(洞天石室)은,

천하의 명산경승으로 신선이 살고 있는 곳을 "동천복지(洞天福地)"라고 한 데서 이름지어 졌다고 하며,

1,000여 평의 공간에 한 칸 정자와 석문, 석담, 석천, 석폭, 석전을 조성하고 차를 마시며 시를 읊었던,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만의 세상 였을것 입니다.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가 보길도에서 조성한,

윤선도의 원림(尹善道 園林)의 하나 이면서,

휴식과 독서를 위해 산허리의 바위 위에 집을 마련한 곳으로,

윤선도가 구현한 선경인 "동천석실(洞天石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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