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의 문화재 탐방에서,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 500에 위치하고 있는,

"화남리 삼층석탑"과 "석조여래좌상"을 찾았습니다.

 

각각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영천 화남리 삼층 석탑(永川 華南里 三層石塔)"과,

"영천 화남리 석조여래좌상(永川 華南里 石造如來坐像)"를 만나려면,

영천시 신녕면에 있는 사찰인 "한광사(閑曠寺)"를 찾아야 하는데,

 

 

 

 

한광사(閑曠寺)는 대승불교 법왕종의 총본산 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신라 문무왕 때 의상스님이 창건하였다 하나 자세한 연혁은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이곳에는 9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삼층석탑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일대가 신라시대의 절터임은 분명하게 여겨지며 조선시대에 들어 폐사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의 사찰은 1958년 옛 절터에 최명도 스님이 중창 하였다고 합니다.

 

 

 

 

한광사(閑曠寺)의 세운지 오래지 않아 보이는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으로,

내부 불단에는 아미타여래상을 주존불로 하여 관음보살상과 지장보살상이 협시되어 있으며,

 

 

 

 

대웅전 앞마당의 왼쪽에는 보물 제675호인 "영천 화남리 삼층 석탑(永川 華南里 三層石塔)"이 있어,

높이 2.7m의 크기이며 옛 한광사의 불전 앞에 동서로 서 있던 쌍탑 중 하나로,

 

 

 

 

아래층 기단 갑석(甲石)은 윗면에 경사가 있고 추녀에 반전(反轉)이 있으며,

상면 중앙에 높직한 굄이 있고 그 위에 상층기단(上層基壇) 중석이 놓여 있는데,

상층기단 중석은 각 면을 1매 판석(板石)으로 짰고,

각 면에는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가 있고 탱주(撑柱 : 받침기둥) 1주로써 양분 하였는데,

그 중 1매석은 떨어져서 내부의 적심석(積心石)을 제거하여 공간을 만들고,

내부에는 석불좌상(石佛坐像, 보물 제676호) 1구를 봉안하였으며 떨어진 면석은 지면에 뉘어 놓았는데,

기단석 한 면을 열자 그 안에서 석불좌상이 발견 되었습니다.

 

 

 

 

갑석은 1매석인데 밑에 부연(副椽 : 탑 기단의 갑석 하부에 두른 쇠시리)이 있고,

상면에는 경미한 경사가 있으며 네 모서리에 우동(隅棟 : 귀마루)이 있어,

추녀 위에 이르러 약간의 반전이 있고 상면 중앙에 1단의 탑신굄이 있는데,

탑신부(塔身部)는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이 각각 1석씩이고 옥신석에는 각 층에 우주형이 모각(模刻)되어 있으며,

 

 

 

 

탑의 옥개석은 두꺼운 편이고 처마 밑은 수평이며 추녀 위에 반전이 뚜렷한데,

밑의 받침수는 각 층 4단씩으로 줄었고 옥정(屋頂)에는 각형(角形) 1단의 옥신굄이 있으며,

상륜부(相輪部)는 모두 없어 졌습니다.

 

 

 

 

영천 화남리 삼층 석탑(永川 華南里 三層石塔)은,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각 층의 지붕돌과 몸돌은 하나의 돌로 조각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석탑의 앞에는 석등(石燈)이 있었을것으로 보여지는 것으로,

석등의 하부만 남은 석등재(石燈材)를 볼수있고,

 

 

 

 

옛 한광사(閑曠寺)에는 1금당 2탑인 형식의 사찰였으나,

쌍탑 가운데 한 기는 훼손되어 어느정도 복원해 두었으며 한 기만 온전히 남아 있으며,

 

 

 

 

석등과 함께 나란이 서 있었을 삼층 석탑은,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규모 이지만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양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삼층석탑 안쪽에는 1칸 규모의 작은 전각이 있어,

 

 

 

 

"대적광전(大寂光殿)"의 현판이 있어,

대적광전은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본존으로 모시는 법당으로,

 

 

 

 

청정한 법신불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은,

항상 고요와 빛으로 충만한 상적광토에서 설법한다고 하며,

"화엄경"에 근거한다는 의미로 화엄전이라고도 합니다.

 

 

 

 

전각에 내부에는 보물 제676호로 지정된 "영천 화남리 석조여래좌상(永川 華南里 石造如來坐像)"이 있어,

대적광전에 설치된 보호각에 봉안된 비로자나불은,

1980년에 영천 화남리 삼층석탑(보물 제675호)을 해체·복원하는 과정 중,

석탑의 기단석 한 면을 열자 그 안에 불상이 모셔져 있던 것을 원래 있던 대좌(臺座)에 모시고 있는데,

 

 

 

 

석조여래좌상은 원래 영천 화남리 폐사지의 삼층석탑의 기단부 내에 있었는데,

석탑 해체 과정에서 발견되었으며 탑내에서 작은 규격의 불상이 발견된 사례는 많이 있으나,

이처럼 등신대 규격의 완형 불상이 현존하는 예는 화남리 석조여래좌상이 거의 유일하다고 하며,

 

 

 

 

얼굴이나 대좌 문양 등은 마모가 심해 세부표현을 알아보기 힘들지만,

불상과 대좌의 특징들은 863년에 조성한 "대구 동화사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

867년의 "봉화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등 9세기에 유행했던 비로자나불과 유사하나,

화남리 석조여래좌상은 9세기 비로자나불상보다 더 도식적이고 반복적인 평행 옷주름 등에서 보여지듯,

경북지역 비로자나불의 영향을 받은 10세기대에 조성된 불상으로 추정되며,

 

 

 

 

화남리 불상은 지권인을 취한 비로자나불로서,

안정적인 신체비율과 둔중한 몸 그리고 둥근 얼굴과 머리,

통견식 대의에 등간격의 균일한 옷주름, 반듯하게 다듬어 직각으로 꺾인 무릎 등이 특징이며,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는,

불보살상과 사자상, 귀꽃 등이 조각된 팔각연화좌로,

통일신라의 9∼10세기 전형적인 양식 입니다.

 

 

 

 

불상의 각이 진 무릎 표현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만큼 독특한데,

무릎과 더불어 신체 측면, 뒷면 등의 직선적인 조형은,

탑 내에 봉안하기 위한 용도의 여래상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으로 여겨지며,

발견 당시에 오랜 세월 막힌 공간에 봉안되어 이끼 등의 이물질이 많이 끼여 있었으나,

지금은 이물질을 제거하고 대적광전의 보호각 안에 봉안되어 있으며,

 

 

 

 

전각 안에서는 문양이 새겨져 있는 석조물의 유구로 보이는 석물들도 볼수 있습니다.

 

 

 

 

9∼10세기 통일신라 시대의 전형적인 석탑양식을 볼수 있고,

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불상의 양식을 찾을수 있는 곳으로,

경북 영천의 한광사(閑曠寺)에서 찾은 문화재인,

"영천 화남리 삼층 석탑(永川 華南里 三層石塔)"과 "영천 화남리 석조여래좌상(永川 華南里 石造如來坐像)"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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