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팔공산(八公山) 기슭에 있는 33관음성지중 하나이며,

통일신라의 승려 혜철국사가 창건한 사찰인 은해사(銀海寺)를 찾았습니다.

 

은해사(銀海寺)는 일제 강점기부터 조선 31본산 하나 였고,

경북 5대 본산에 속했으며 현재는 대한불교 제 10교구 본사로 경북지방의 대표적 사찰중 하나이며,

교구 본사 중 본존불로 아미타불을 모시는 미타도량으로도 유명한 사찰로,

 

 

 

 

809년(헌덕왕 1)에 혜철국사(惠哲國師)가 해안평(海眼坪)에 창건한 사찰로 처음에는 해안사(海眼寺)라고 하였고,

그 뒤 1270년(원종 11)에 홍진국사(弘眞國師)가 중창하였고, 1275년(충렬왕 1)에는 원참(元旵)이 중건하였으며,

1485년(성종 16)에는 죽청(竹淸)과 의찬(義贊)이 묘봉암(妙峰庵)을 중창하였습니다.

1543년(중종 38)에는 보주(寶珠) 등이 중수하였으며,

1545년(인종 1)에는 천교(天敎)가 지금의 장소로 법당을 옮겨 새로 절을 지었는데,

그때 법당과 비석을 건립하여 인종의 태실(胎室)을 봉하고 은해사(銀海寺)라고 하였으며,

 

 

 

 

그후 여러차례에 걸쳐 신축과 중건을 거듭하였으나,

1847년(헌종 13)에는 은해사 창건 이래 가장 큰 불이 나서 1,000여 칸의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고,

같은 해 팔봉(八峰) 등이 주관하여 사방 아홉 칸의 법당과 심검당(尋劍堂) 등의 건물을 새로 지었으며,

1920년에는 석담(石潭)이 대웅전과 단서각(單捿閣), 계삼당(洎三堂), 보화루, 창고를 수선하고,

주지실과 요사 4동 및 2대문(大門)을 지어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홍진국사가 머문 뒤에는 선교양종(禪敎兩宗)의 총본산으로서 사격(寺格)이 고양되었고,

조선 후기의 고승 영파(影坡)가 이곳을 중창한 뒤로는 화엄교학(華嚴敎學)의 본산으로서 그 명성을 드날렸습니다.

 

 

 

 

보화루를 지나면 경내에는 늠름하게 서있는 향나무가 가장먼저 들어오며,

향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약 450년 수령의 노거수 이며,

 

 

 

 

안쪽에는 금당인 극락보전(極樂寶殿)이 있어,

헌종 13년(1847)에 일어났던 대형 화재에서 유일하게 화마를 피한 건물로,

 

 

 

 

경상북도의 문화재자료 제367호로 지정되어 있는 극락보전(極樂寶殿)은,

정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재건불사를 진행하며 추사 김정희의 글씨인 "대웅전(大雄殿)" 편액을 달기도 하였는데,

오랫동안 대웅전의 편액을 그대로 사용하다 2009년에 개산 1200주년을 맞아 "극락보전(極樂寶殿)"으로 바꾸었으며,

 

 

 

 

극락보전의 축대 아래 양쪽에는,

보물 제1270호인 은해사 괘불탱을 거는 "괘불지주"를 볼수 있고,

 

 

 

 

극락보전(極樂寶殿)의 내부에는 "아미타삼존불(彌陀三尊佛立像)"을 모시고 있어,

주불로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와 협시불로 왼쪽에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과,

오른쪽에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모셨으며,

 

 

 

 

"목조아미타불좌상"은 아미타불화와 더불어 은해사를 미타도량으로 불리게 한 주역으로,

최근에 복장유물에서 영조 5년(1729)의 중수 발원문이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영조 26년(1750)에 화승 처일, 근헌이 조성 하였다는 후불탱화(後佛幀畵)인 아미타삼존도는,

중앙에는 아미타불을 좌우에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이 모셨으며,

 

 

 

 

불단의 상부는 낙양각이 조각된 보개(寶蓋)를 얹고,

용(龍) 과 단조(단鳥) 및 비천상(飛天像)으로 장식 하였으며,

대량(大樑)위에 걸친 충량(衝樑)머리는 용두(龍頭)를 조각하였는데 조선말기의 다소 과장된 형식으로,

 

 

 

 

내부는 우물마루를 깔고 내부기둥에 의지해 불단을 만들었으며,

통상적으로 다포식 건물은 내출목이 외출목보다 2출목들 더 설치 하였는데,

이것은 사찰 자리가 평지인 경우 건물 고를 높이기 위해 사용된 방식이며,

천장은 용 및 비천상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고 대량 위에 걸친 충량 머리에는 용머리를 조각 하였습니다.

 

 

 

 

극락보전 옆에는 "지장전(地藏殿)"이 있어,

정면3칸, 측면3칸 규모로 정면은 모두 들문인 4분합문으로 되어있고,

 

 

 

 

지장전(地藏殿)은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봉안한 사찰의 전각으로,

지장전(地藏殿),명부전(冥府殿),시왕전(十王殿)이라고 일컫으며,

염라대왕등 10왕을 모신 전각인데 주존은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시고 있습니다.

 

 

 

 

뒤편에는 "단서각(單棲閣)"이 자리하고 있어,

일반적으로 중앙에 독성 탱화가 모셔진곳으로 "독성각(獨聖閣)"으로도 불리는데,

 

 

 

 

독성은 독수선정(獨修禪定)하여 도를 깨달은 자로서,

일반적으로 독성각에는 나반존자(那畔尊者)를 봉안하는 것을 통례로 하고 있습니다.

 

 

 

 

한쪽에는 조사에 대한 신앙을 기리기 위한 전각으로 "조사전(祖師殿)"이 있어,

 

 

 

 

조사전(祖師殿)에는 은해사와 관련 있는 큰스님 세분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는데,

 

 

 

 

중앙에는 은해사의 전신인 해안사를 세운 개산조 해철국사(惠哲國師)의 진영이 모셔져 있습니다.

 

 

 

 

경내를 돌다 보니 사찰의 공양간이 있는지,

가지런하게 놓여진 장독대의 장독들을 볼수 있고,

 

 

 

 

요사채 쪽도 슬쩍 들여다 보게 됩니다.

 

 

 

 

성보박물관 뒷쪽에는 "쌍거북 바위"가 있어,

 

 

 

 

바위에 새겨진 와불상을 만나게 되는데,

마애불의 발바닥을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 진다고 하며,

 

 

 

 

와불상은 그리 깊게 암각되지 않았지만,

간결하지만 잘 표현된것으로 보이며,

 

 

 

 

뒤편에는 작은 연못과 함께 길게 누운 바위가 있어,

 

 

 

 

앞쪽에서 보면 영락없는 거북이의 형상으로,

 

 

 

 

은해사 쌍거북바위는 일제시대 일본의 한국 정신문화 말살정책으로 사라졌었는데,

2005년 가람 주변의 정비중 목이 잘린 1구가 발견이 되어,

마에 삼존불과 함께 복원했으며 옛날 유생들이 과거보러가기전에 소원을 발원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와불상이 새겨진 바위 뒤편에는 마애삼존불이 조성되어 있으며,

 

 

 

 

쌍거북 바위 주변은 작은 연못과 함께,

아기자기하게 조성해두어 작은공원을 연상케 합니다.

 

 

 

 

입구인 천왕문과 보제루 사이에는 부도군이 조성되어 있어,

 

 

 

 

가운데에 동곡 일타대종사(1929~1999) 탑비를 중심으로 좌우에 포산당 혜인대종사 부도탑과,

무어당 규백대선사 부도.포운당 성진대선사 부도탑 등이 모셔져 있고,

 

 

 

 

조선후기의 여러 석종형 부도를 비롯하여,

일제강점기인 1943년도에 김 정래(金鼎來) 글씨로 새겨진 은해사 사적비 등이 있으며,

 

 

 

 

뒷편으로 16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불보살(佛菩薩), 나한 등이 중중무진으로 계신 것처럼 웅장한 모습이,

마치 은빛 바다가 춤추는 극락정토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주변에 안개가 끼고 구름이 피어날 때면 그 광경이 은빛 바다가 물결치는 듯 하다" 의미의 사찰인,

영천의 고찰인 "은해사(銀海寺)"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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