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고성군 구만면 효락리에 있는,

조선후기에 세워진 정자인 소천정(蘇川亭)을 찾았습니다.

 

경상남도의 문화재자료 제160호로 지정된 "소천정(蘇川亭)"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소계(蘇溪) 최강(崔堈)과 최균(崔均) 형제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872년에 후손들이 세운 정자이며,

정자를 세운 터는 최강이 어릴 때 무술을 연마한 곳으로,

 

 

 

 

의병장 최균(崔均)은 주역과 천문지리에 능통했으며,

임진왜란 때 동생 최강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고성 등지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는데,

1597년 정유재란 때도 동생과 함께 무공을 세워 통정대부에 올랐고 만년에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승진했으며,

 

 

 

 

최강(崔堈)은 1585년(선조 18) 무과에 급제한 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소호 최균(蘇湖 崔均)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고성과 진해 사이에서 많은 공을 세웠는데,

진주 목사 김시민(金時敏)과 합세하여 진주성싸움에서 공을 세웠고,

1593년 김해로부터 웅천에 침입하려는 왜적을 격퇴하였으며,

1594년 김덕령(金德齡)의 별장으로 고성에서 왜군과 싸웠는데,

그는 화공법을 잘 구사하여 일본군 선박을 불태우는 전공을 세우기도 하였으며,

임진왜란 후 1606년에 경상도좌수사, 광해군 때 충청도수군절도사에 임명되었다가,

1613년(광해군 5) 이이첨(李爾瞻) 등이 무고하여 일으킨 인목왕후의 아버지 김제남(金悌男)이,

외손자 영창대군을 추대하려 한다는 옥사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받고,

문초를 받은 뒤 풀려났으나 사직하고 은퇴하였고,

후일 포도대장에 임명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사퇴 하였고 56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사후에 병조판서의 직위가 내려졌으며 "의숙공"이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소천정으로 들어가는 정문은 닫혀 있으나,

다행이 옆에 있는 협문은 열려있어 안으로 들어 갈수 있으며,

 

 

 

 

소천정은 정면 4칸, 측면 1.5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네모꼴의 처마에 세모꼴의 지붕을 올린 팔작지붕으로,

구릉의 서북쪽 비탈면에 남족을 향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정자앞 마당 한켠에는 비석이 한기 서있어,

정자를 세우거나 중수 하면서 힘을 보탠 이들을 기록하고 있는듯 하며,

 

 

 

 

정자의 정면 처마 아래에는 "소천정(蘇川亭)"의 현판이 올려져 있고,

 

 

 

 

소천정은 마루와 온돌방으로 구성된 1칸에,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2칸과 마루방 1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공포양식은 정면의 툇마루 상부에만 "소로"로 장식한 소로수장집이며 나머지는 "장여수장집" 양식으로 되어있고,

기둥과 기둥 위에 건너 얹어 서까래를 놓도록 하는 도리는 3개이며,

위에서 소로는 장여나 살미, 첨차, 쇠서, 익공 등 공포재의 밑에 받치는 됫박 모양의 네모진 나무를 말하고,

장여수장집은 민도리집형식으로도 불리며,

기둥이나 벽체 윗부분이 도리와 장여 사이에 소로 없이 도리와 장여만으로 된 구조를 말합니다.

 

 

 

 

정자의 마루위에는 소천정(蘇川亭)을 노래한 원운(原韻)의 편액(扁額)이 있고,

 

 

 

 

시액(詩額)과 함께 소천정과 관련한 기문(記文)의 편액들이 올려져 있으며,

 

 

 

 

정자의 내력을 알려주는 소천정기(蘇川亭記)의 기문(記文) 편액을 볼수 있습니다.

 

 

 

 

정자의 마루쪽은 들문인 사분합문(四分閤門)을 두었지만,

정면은 모두 여닫이 문이고 문의 윗쪽에 크고 작은 창들이 있어,

조선후기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정자의 문은 모두 닫혀있어 방의 내부는 들여다 볼수가 없습니다.

 

 

 

 

소천정의 마루에서 앞을 내려다 보면,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채의 모습이 들어오고,

 

 

 

 

정자 마루에서의 경관은 그리 좋은편은 아니어서,

소천정은 자연경관을 감상하고 인격을 닦는 일반적인 정자의 형식에서 벗어나,

공부하고 집회를 갖는 재실의 성격 갖는것으로 보여지며,

 

 

 

 

언제 축조하였는지는 알수 없으나,

정자 위쪽에는 "낙동상소류지"라는 저수지가 있어,

담장 너머로 저수지의 제방이 조금은 위협적으로도 느껴 지기도 하는데,

 

 

 

 

정자에서 내려와 뒤편을 돌아 보는것으로 답사를 마무리 합니다.

 

 

 

 

경남 고성으로의 문화재 탑방에서,

의병장 소계(蘇溪) 최강(崔堈)과 최균(崔均) 형제의 충심을 되돌아 볼수있으며,

후손들이 그를 기리기위한 정자인,

고성의 정자 문화재, 소천정(蘇川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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