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의,

해발 560m 호구산(虎口山) 기슭에 자리 잡은,

호국사찰인 남해 "용문사(龍門寺)"를 찾았습니다.

 

남해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며,

열 두명의 고승을 배출한 남해 최대의 사찰로,

 

 

 

 

앵강만을 굽어보는 호구산(虎口山) 자락에 위치한 용문사(龍門寺)는,

663년(신라 문무왕 3)에 지어 졌다고 하며,

남해의 미국마을을 지나서 오르면 만날수 있어,

 

 

 

 

용문사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전각은 "포대화상"을 모시고 있는 공덕전으로,

 

 

 

 

포대화상(布袋和尙,생년 미상-917년?)은 당나라 말기부터 오대 십국 시대까지,

명주(현재의 중국 저장성 닝보시)에 실재했다는 전설적인 불승으로,

포대는 정웅대사(定應大師)라고도 하며 이 고승은 늘 작대기에 포대(자루)를 메고 다니면서,

무엇이든 동냥한 것을 그 속에 담곤 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별명을 얻게 된 것이며,

포대화상은 배가 나오고 대머리이며 때로는 호탕하게 웃고,

때로는 거칠면서도 선종에 명석하였던 인물로 미륵보살의 현신(現身)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용문사는 원효대사가 충청남도 금산에 세운 보광사(普光寺)를,

나중에 이곳에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하는데 처음 지은 시기는 명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으며,

세월이 지나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 졌으나,

1660년에 백월당 스님이 보광사 대웅전 등의 건물을 이곳으로 옮기고 사찰 이름도 ‘용문사’라고 고쳐 불렀으며,

1661년에 탐진당과 적묵당을 지었고 1666년에 일향스님이 대웅전을 창건했고 지혜스님이 다듬고 윤색하게 하였는데,

임진왜란 때에는 승병활동의 근거지로서 조선 숙종 때 수국사로 지정하며 보호받기도 했습니다.

 

 

 

 

공덕전 포대화상옆의 세심교를 건너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50호인 "천왕각(天王閣)"을 만나게 되어,

정면3칸, 측면2칸의 크기로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1702년(숙종18)에 처음 건립 되었다고 하며 "남해용문사중흥기(南海龍門寺重興記)"에 의하면,

1896년(고종 33) 호은(虎隱) 스님이 용문사 천왕각(天王閣)을 중건 하였다고 하며,

 

 

 

 

천왕각 앞에는 작은 비석도 볼수 있고,

 

 

 

천왕각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8호인 "남해 용문사 목조사천왕상(南海 龍門寺 木造四天王像)"이 있어,

사천왕은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외호신으로,

사찰 경내로 들어서는 입구의 천왕문(天王門) 내부 좌우로 각 2구씩 봉안 되는데,

용문사 사천왕상은 300cmX230cm 크기이며 1702년(숙종 28)에 조성 되었습니다.

 

 

 

 

용문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의 뜻을 받들어 승려들이 일본군에 맞서 싸운 호국사찰로,

숙종 임금(1675~1720)은 승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싸워 나라를 지킨 용문사를,

호국사찰이라 하여 수국사(守國寺)로 지정 했으며,

숙종 임금은 용문사 경내에 축원당을 건립 해주고 위패를 비롯하여 연옥등, 촉대 등을 하사 했다고 하며,

 

 

 

 

천왕각을 지나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94호인 "봉서루(鳳棲樓)"를 만나게 되어,

누각인 봉서루의 초창은 1720년에, 현재의 모습을 보이는 구성의 중창은 1833년에 이루어진 것으로,

정면 7간, 측면 4간의 팔작지붕으로 된 중층건물로서 누하진입형식의 공간구성을 하고 있으며,

상층은 우물마루의 넓은 강당으로 구성되어 있어,

 

 

 

 

봉서루의 누각에서 용문사의 계곡을 내려다 봅니다.

 

 

 

 

용문사 경내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7호로 지정된 "목조(木槽)"가 있어,

구유(일명 구시통)로도 불리는 목조(木槽)는 통나무 몸통 둘레 3m, 길이 6.7m 나 되는 거대한 크기이며,

많은 대중들의 밥을 퍼두는 함지통이라 할 수 있는데,

본시 구유는 아름드리 통나무속을 파내고 마소의 먹이를 담아주는 큰 그릇인데,

많은 신도들이 운집하느 법회나 대작불사를 회향할때와 유사시 승병들의 밥을 퍼두던 용기로 발전하였으며,

1000명분의 밥을 퍼담았을 정도로 큰 그릇이라 하며,

임진왜란때 승병의 밥을 퍼담아 쓰던 밥통으로도 전해오고 있습니다.

 

 

 

봉서루를 지나면 용문사 경내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정면에는 용문사의 주불전인 대웅전(大雄殿)이 자리해 있어,

 

 

 

 

"남해 용문사 대웅전(南海 龍門寺 大雄殿)"은 보물 제1849호로 지정되었으며,

중창(重創) 기록과 건축 양식으로 볼 때,

조선 현종 7년(1666)에 일향화상(一香和尙)에 의해 건립되고,

영조 47년(1773)에 중수(重修)가 완료돼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대웅전의 내부에는 설법인을 취하고 있는 본존불을 위시하여,

좌우로 문수, 보현보살이 협시하여 있는 삼존불을 모셨으며,

후불탱인 영산회상도를 진본 그대로를 걸어 놓고 있어,

 

 

 

 

남해 용문사 대웅전은 평면 구성과 공포의 표현기법,

상부 가구와 닫집(궁궐이나 절에서 불상을 감싸는 작은 집이나 불상 위를 장식하는 덮개) 등에서,

수려한 장엄 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는데,

 

 

 

 

이러한 장엄의 극치는 18세기 이후 건립된 사찰 주불전의 특징적 건축양식으로,

서남해안 지역의 건축 경향이 동쪽 지역으로 확장되어 발전하는 양식적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로,

기단은 지형을 고려하여 전면은 2단으로 높게 형성하고 배면과 측면은 1단으로 구성 하였으며,

기둥은 4면의 우주(隅柱, 건물의 모퉁이에 세운 기둥)를 평주(平柱, 한 층 높이의 기둥)보다 크고 높게 사용하였고,

전면과 후면 그리고 측면의 순서로 기둥 크기를 달리하여 정면성과 안정성을 꾀하고 있습니다.

 

 

 

 

대웅전 왼쪽 떨어진 곳에 앞면 3칸, 옆면 2칸인 맞배지붕건물이 있어,

소박하고 간결한 모습의 "영산전(靈山殿)"으로,

 

 

 

 

영산전(靈山殿)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시는 전각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좌우에 상수제장인 가섭과 아난을 모시기도 하나,

대개 열여섯분의 나한을 좌우로 모시고 있는데,

이곳의 영산전에는 모두 스물두 분의 존상이 모셔져 있는데,

흙으로 빚은 소조(塑造) 석가여래 삼존상과 16나한상 및 시자(侍者) 등 그 권속(眷屬)이 봉안되어 있으며,

 

 

 

 

오른쪽 위편에는 근자에 지은듯한 "칠성각(七星閣)"이 있어,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이고 맞배지붕이 구조이며.

 

 

 

 

칠성각(七星閣)은 인간의 수명장수와 재물을 관장하는 칠성신을 모시는 사찰 전각으로,

칠성은 본래 도교에서 신앙하던 것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기우·장수·재물을 비는 민간신앙으로 자리 잡았는데,

칠성신 신앙이 불교에 수용되어 사찰 안에 칠성각을 짓고 칠성신을 모시게 되어,

이는 우리나라의 사찰에서만 볼 수 있는 특유한 경우 입니다.

 

 

 

 

대웅전 뒤편의 호구산 기슭에는 푸른 차밭 조성되어 있어,

 

 

 

 

푸른 물결처럼 넓게 펼쳐진 차밭의 풍광과,

이곳에서 바라 보이는 바다의 풍경도 일품입니다.

 

 

 

 

대웅전 옆에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51호로 지정된,

남해 용문사 명부전 (龍門寺冥府殿)이 있어,

정면 3칸 측면2칸으로 맞배지붕의 아담한 규모이며,

명부전(冥府殿)은 죽은 사람이 간다는 저승의 유명계(幽冥界)를 상징하는 사찰 당우로,

 

 

 

 

 

유명계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봉안하고 있으므로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하며,

명부전(冥府殿)은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해서 시왕을 모시기 때문에 지장전(地藏殿) ·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하며,

법당의 주불은 지장보살이며,

그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협시로 봉안하며 다시 그 좌우에 명부시왕상을 안치합니다.

 

 

 

 

경내에서 나와 부도전이 있는쪽으로 발길을 잡습니다.

 

 

 

용문사 승탑군(龍門寺 僧塔群)은 경남 유형문화재 제42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일주문에서 100여 미터 아래의 낮은 둔덕에 위치해 있는 9기의 석조 부도군으로,

 

 

 

 

부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자연 암반에 글씨가 암각되어 있고,

바위의 위에는 비석 한기가 서있는 모습이 들어오고,

 

 

 

 

용문사 부도의 조성 시기는 주로 17~18세기의 것으로,

용문사에 주석하면서 업적을 남긴 역대 고승들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것으로 보이며,

 

 

 

 

9기의 부도는 모두 조선 후기의 석종형부도 형태로서, 각 부도마다 승려들의 당호가 음각되어 있어,

부도의 주인을 알수 있는데 효월당한묵대사(曉月堂閒黙大師)와 송곡당대사(松谷堂大師)의 부도를 비롯하여,

청하당대사증심(靑河堂大師證心)과 세담당일행대사(洗淡堂一行大師)의 부도가 있고,

은암당원준대사(隱岩堂元俊大師)의 부도를 확인 할수 있습니다.

 

 

 

 

경남 남해는 유명한 여행지여서,

돌아볼만한 곳이 많은 곳으로,

사찰인 용문사(龍門寺)는 그리 많은 이들이 찾는곳이 아니지만,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이 있어 더위를 피할만한 곳이며,

경남 남해를 여행하시면 찾아 볼만한 곳으로,

호국사찰인 "용문사(龍門寺)"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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