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의 농촌전통 테마마을인,

남사예담촌(南沙礼谈村)을 찾았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로 선정된 "남사예담촌(南沙礼谈村)"은,

"옛 담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내면적으로는 담장 너머 그 옛날 선비들의 기상과 예절을 닮아가자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며,

 

 

 

 

지리산 초입에 자리잡은 남사예담촌은,

안동하회마을과 더불어 경상도의 대표적인 전통한옥마을로,

경남하면 산청남사 마을이라고 할 정도로 옛날부터 그 명성이 자자했던 이 마을은,

양반마을로 또한 지정 문화재가 많은 전통한옥마을로 유명한 곳이며,

 

 

 

 

남사예담촌(南沙礼谈村)은 고즈넉한 담장과 함께,

우리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

"남사 옛마을담장"이 등록 문화재 제28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지리산 깊은 곳에 위치하면서 18~20세기 전통 한옥 40여 호에 85채의 전통 한옥이 있는 남사마을 입니다.

 

 

 

 

남사마을에서 가장먼저 찾은곳은,

남사마을 중앙에 자리잡은 가장 큰 집인 최씨 고가(崔氏古家)로,

 

 

 

 

"산청 남사리 최씨고가(山淸 南沙里 崔氏古家)"는,

경상남도의 문화재자료 제117호로 지정 되었으며,

 

 

 

 

최씨 고가(崔氏古家)에는,

수령 150년 가량의 매화나무가 있어,

 

 

 

 

원래 대문옆에 있던 400년된 매화나무가 고사한후 심은 후계목으로,

"최씨매" 라고도 불리며,

 

 

 

 

최씨 고가(崔氏古家)는 1930년대 지은 집으로,

건물은 안채를 중심으로 사랑채와 익랑채가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사랑채 좌우에는 중문이 두곳 설치 되어 있으며,

 

 

 

 

"월강고택" 이라고도 하며 안채는 정면 6칸에 측면 3칸이고,

그림에 보이는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로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최씨 고가를 돌아보고 찾은곳은,

1920년대에 건립된 정사인 "사양정사(泗陽精舍)"로,

 

 

 

 

사양정사(泗陽精舍)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53호로 지정 되었으며,

한말의 유학자인 정제용(鄭濟鎔,1865~1907)을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 정덕영과 장손 정정화가 지은 정사로,

정제용은 포은 정몽주의 후손으로 한말의 유학자인 후산(後山) 허유(許愈)와,

유림을 대표하여 파리장서를 작성한 면우(免宇) 곽종석(郭鍾錫)의 문인 입니다.

 

 

 

 

사양정사(泗陽精舍)의 편액은 성당(惺堂) 김돈희(金敦熙,1871~1937)의 글씨이며,

사양정사란 "사수(泗水) 남쪽의 학문을 연마하는 집"이란 의미라 하며,

 

 

 

 

마루 안쪽에는 "존도재(尊道齋)"의 현판이 있어,

소전(素筌) 손재형의 아우 긍전(肯筌) 손재복의 글씨이며,

저존실(著存室)은 부모나 선조에 대한 생각과 공경을 지극히 하면 돌아가 안계시지만,

나타나(著) 존재(在)하는 것처럼 느낀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사양정사는 건립 후 정덕영이 자식들을 교육하거나 손님들을 맞이하는 장소로 이용 하였으며,

다락이나 벽장 등의 수납공간이 풍부하며 유리를 사용한 부분이 있어 근대한옥의 변화상을 볼 수 있고,

지붕은 홑처마에 천장이 높고 부재가 튼실하며,

 

 

 

 

정사는 정면7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천장이 높고 부재가 튼실하며 치목이 정교하고 수납공간이 풍부하게 지었으며,

충절을 상징하는 홍살을 솟을대문에 달아 사양정사의 품격과 풍부한 경제력을 나타 내었습니다.

 

 

 

 

사양정사의 작은 협문 옆에는,

120년된 노거수 배롱나무를 볼수 있어,

중국 남부가 고향인 배롱나무는 목백일홍이라고도 하여,

100일동안 꽃이 번갈아 피고져서 오랫동안 꽃을 볼수 있는 나무로,

선비화 또는 자미목, 간지럼나무 등 여러 이름이 있으며,

추위에 약해 주로 충청남도 이남에서 자라며,

 

 

 

 

협문안에는 살림집으로 사용되는 안채 뒤로 지어진 별채 건물인 "선명당(善鳴堂)"이 있어,

 

 

 

 

선명당(善鳴堂)의 현판으로,

경상남도 진주에서 활동한 서예가 은초(隱樵) 정명수(鄭命壽,1909~2001)글씨이며,

 

 

 

 

선명당(善鳴堂)은 사양정사와 더불어 연일정씨의 후손들이 대대로 공부를 하던 곳으로,

겨울의 추위를 막고저 여닫이와 미닫이로 2중문을 해두어,

주선후기의 건축 양식임을 알수 있고,

 

 

 

 

누마루에는 차를 마실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으며,

 

 

 

 

정면 4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의 구조인 선명당은,

호남식 정자의 전형적인 형식과 같은 유형으로,

중간에 두 개의 방을 들이고 양쪽에 누마루 형태를 띤 마루를 두었으며,

중간을 경계로 큰방과 작은방이 하나씩 있고 마루가 있는 2개의 생활공간이 합쳐져 있는 모양입니다.

 

 

 

 

선명당에서도 매화나무를 볼수있어,

"정씨매"라고 명명되어 있으며,

 

 

 

 

수령 약 150년의 정씨매는,

남사마을 매화나무중 가장 늦게 꽃을 피운다고 하며,

 

 

 

 

선명당 앞에는 220년된 단풍나무가 있어,

이 단풍나무는 전국에 보급된 홍단풍의 어미나무로,

봄에는 잎이 붉은색이지만 여름에는 녹색으로 물들고 가을에 다시 붉은색으로 변하는,

귀한 홍단풍 나무라고 하는데,

 

 

 

 

이곳의 단풍나무는,

겨울 채비를 걱정하는 종가집 며느리를 가여워하던 시아버지가 심은 것으로,

붉게 물든 단풍을 보며 잠시 시름을 잊으라는 뜻으로 심겨 졌다고 합니다.

 

 

 

 

사양정사와 선명당을 돌아보고 밖으로 나오면,

 

 

 

 

하씨고가의 뒤뜰에 있는 "감나무"가 있어,

오늘날 산청 감의 원조라 하는 "하씨고가의 감나무"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감나무로 수령이 약 620년이나 된다고 하는데,

 

 

 

 

높이 13미터, 둘레 1.85미터 크기의 감나무로,

전형적인 반시(납작감)로 산청 곶감의 원종이기도 하며 현재에도 감이 열리고 있으며,

이 감나무는 이곳 출신으로 하즙(河楫)의 증손자이며,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文孝公) 경재(敬齋) 하연(河演)이,

7세 때 어머니께 홍시를 만들어 드리기 위해 손수 심은 감나무라고 합니다.

 

 

 

 

남사예담촌은 농가 105호에 비농가 30호로 주민 숫자가 340명이나 되어,

전통 마을 기준으로 볼 때 작지 않은 마을 이지만,

많은 가옥이 남부 지방 양반 가옥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어,

마을 전체가 살아 있는 한국 전통 역사 박물관이라고 평가되기도 하는곳으로,

경북의 대표적인 한옥 마을이 하회마을이라면 경남에는 남사마을이 있다고 할 정도이며,

 

 

 

 

마을의 내를 건너면 이사재(尼泗齋)를 찾을수 있어,

 

 

 

 

입구에는 1597년에 이순신장군이 백의종군시 유숙한 곳을 알려주는 안내비가 있어,

이순신장군이 이곳에 묵어가게 된 설명의 글이 적혀 있는,

이사재 유숙지임을 알려주는 표지가 있고,

 

 

 

 

난중일기에는 1597년(정유년) 6월1일에,

권율도원수가 있는 합천(율곡)으로 가는 길에 하룻밤을 유숙한 곳이라고 적혀 있으며,

이사재 입구에는 충무공백의종군비가 있는데 "산청백의종군로"의 첫코스 이기도 합니다.

 

 

 

 

이사재의 정문인 거유문 (居由門)을 들어서면,

 

 

 

 

문옆에 수령 80년의 이사재의 매화나무가 있어,

박씨매라고도 불리는 매화나무는,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백의종군시 박호원 농노의 집에 유숙할때,

매화나무를 보고 위안을 삼았다는 유래에서 후계목으로 가꾸어 온다고 하며,

 

 

 

 

이사재 서편에는 암반 밑에 얕은 우물이 있고 장방형의 연못이 연결되어 있어,

이곳의 우물과 연못은 모서리에 잘 가공된 장대석과 장식 조각이 있어 건립 당시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선비 사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연못 옆에는 200년 수령의 이사재의 배롱나무가 있어,

이곳의 배롱나무 가지에는 유난히 연리지가 많이 볼수 있는데,

 

 

 

 

연리지는 남녀사이 혹은 부부애가 좋은 것으로 비유되며,

예전에는 효성이 지극한 부모와 자식을 이에 비유하기도 하였다고 하는데,

이 나무의 연리지를 보는 연인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잘 산다는 속설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28호인 이사재(尼泗齋)는,

정면5칸.측면2칸의홑치마 팔작지붕으로,

이사재는 호조판서를 지낸 송월당(松月堂) 박호원(朴好元)을 기리는 재실로,

학문연마의 강학장소로 사용된 곳이기도 하였던 곳으로,

 

 

 

 

이사재(尼泗齎)의 현판으로,

현판의 글씨는 송주 하도의 글씨라 하며,

이사재는 이구산(尼丘山) 과 사수(泗水)의 첫 글자를 딴 것으로,

이구산은 공자의 고향 뒷산이고 사수는 공자 고향 앞에 흐르는 강이며,

 

 

 

 

마루 위에는 보에서 상량의 글귀도 볼수 있으며,

 

 

 

 

이사재의 마루에서는,

남사마을의 큰동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며,

 

 

 

 

이사재에서 내려와 다시 개천을 건너서 사효재(思孝齋)를 찾아봅니다.

사효재로 들어가는 문은 "귀후문(歸厚門)"이며,

 

 

 

 

"돌아가신 분을 귀하게 모시면 그 덕이 후하게 자손만대에 돌아간다"는 의미의 귀후문(歸厚門)을 들어서면,

500년 수령의 향나무가 서있어,

이곳의 향나무는 사효재를 짓기 전에 심어져 있었으며 제례를 올릴 때 향으로 사용하였다고 하며,

 

 

 

 

사효재는 정면4칸에 측면4칸의 규모로 팔작지붕이며,

전퇴를 두고서 가운데 1칸의 마루을 두고 왼쪽으로는 1칸의 방을 두었고,

오른쪽에는 2칸의 방을 연이어 들였으며,

 

 

 

 

사효재(思孝齋)의 현판으로,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의 은혜를 생각한다는 집"이란 의미이며,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서 태어난 이윤현(李胤玄,1670~1694)은,

자(字)는 시로(時老) 호(號)는 영모당(永慕堂)이며,

조선 숙종32년(1706) 피접(避接) 중인 아버지를 해치려는 화적의 칼을,

자신의 몸으로 막아낸 영모당(永慕堂) 이윤현(李胤玄)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지은 재사로,

 

 

 

 

성주이씨 집안의 효자 이윤현(李胤玄)은,

1687년에 번창했던 천연두를 피하기 위해 부친을 모시고 산촌으로 피접 하였는데,

그곳에서 만나게 된 산적이 아버지에게 칼을 들이대자,

몸으로 막아 온몸에 칼을 맞고 팔이 잘리는등 온몸에 부상을 입어 병을 얻어 8년을 견디다 결국엔 숨졌는데,

이때의 나이 스물네 살의 꽃다운 나이였다고 하며,

이에 나라에서 효자 정려를 내리고 효자가을 지어 그의 효심을 크게 기렸는데 그 효자각은 남사마을 국도변에 있습니다.

 

 

 

 

전통 한옥마을로는 제법 큰 규모이며,

마을 전체가 살아 있는 한국 전통 역사 박물관이라고 평가 되는곳으로,

카메라의 오류로 인해 300년 된 회화나무와 하씨고가,

그리고 이씨고가의 내용이 날라가 버린 아쉬움이 있어,

매화가 피어나는 계절에 다시 찾고 싶은곳으로,

농촌전통 테마마을인 산청의 "남사예담촌(南沙礼谈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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