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의 문화재로 소개해 드릴곳은,

구미 낙동강변의 작은 정자 "매학정(梅鶴亭)" 입니다.

 

구미시 고아읍 예강리에 위치한 "매학정"은,

도로에서 마을길을 가로 질러야 이를수가 있으며,

변변한 주차장조차 없어서 정자앞 낙동강변에 차를 두어야 하지만,

찾는이가 많지 않아서 주차에 어려움을 느끼지는 못합니다.

 

 

 

 

예강리 낙동강 서쪽의 보천 산기슭 보천탄 가에는 고산(孤山)이 있고,

고산밑에는 매학정이 자리잡고 있는데 흘러가는 물결을 바라보며 외로이 서 있습니다.

 

 

 

 

이곳 매학정은,

조선중기 경주 부윤을 지낸 상정 "황필"이,

처음 이곳에 모옥 몇칸을 지어 만년을 보내다가,

1533년에 상정의 손자 고산 "황기로"(黃耆老 1521_1575)선생이,

이곳에 정자를 짓고 매학정((梅鶴亭)이라 명명하였다고 하며,

사위인 옥산 "이우"가 풍류를 즐기고 학문을 연마하였다고 전하며,

"황기로"와  "이우" 두사람 모두 서예의 대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의 서예가 가운데,

구미 출신의 고산 황기로는 초서의 최고경지에 올라 초성(草聖)으로 알려지면서,

중국에서 ‘제2의 왕희지’로 칭송받았다고 합니다.

 

황기로는 평생을 매화와 학을 가까이 한 인물로,

이곳 구미시 고아읍 예강리 낙동강이 보이는 고산 기슭에 매학정을 지어 머물렀으며,

구미의 상징인 금오산의 바위에도 대형 초서작품인 ‘금오동학(金烏洞壑)’을 남긴 명필로 알려져 있습니다.

 

 

 

 

천정 대들보에 매달려있는 큰북이 이채롭습니다.

 

 

 

 

이곳을 관리하시는 후손께서,

아마도 엿질금을 만드는 과정으로 말리는 중인가 봅니다.

가지와 버섯등의 나물류와 함께 양지바른곳에 널려 있습니다.

 

 

 

 

오랫만에보는 시골의 향기중 하나입니다.

 

 

 

 

우물 형상의 천정 구조입니다.

 

 

고산은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처사로 은거하면서 매처학자를 실현한 사람으로,

일찍부터 서예에 전념하여 일가를 이루었다고 하며,

조선조 서예사에서 김구(金絿)·양사언(楊士彦)과 함께 초서의 1인자로 평가받았으며,

후대에 영향을 많이 끼쳤다고 합니다.

특히, 초서를 잘 써서 ‘초성(草聖)’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매학정 엎에는,

구미의 고아지역과 해평지역 가로지르는,

낙동강을 건너게 해주주는 숭선대교를 배경으로,

낙동강과 그주변의 정취를 즐길수가 있습니다.

 

 

 

 

보물로 지정된 고산선생 초서입니다.

(문화재청에서 가져왔습니다)

登蒲澗寺後二巖, (五言律詩)

作者 ; 李群玉

書者 : 黃耆老

五仙騎五羊,何代降玆鄕.

澗有堯時韭,山餘禹日糧.

樓臺籠海色,草樹發天香.

浩笑烟波裏,浮溟興甚長.

*시제 : 창포간이란 절 뒤의 두 바위

다섯 신선이 다섯 마리 양을 타고,

어느 시대 이 시골에 내려 왔든가?

창포간에는 요임금때 부추가 있고,

산엔 우임금 때 등나무 양식 있네.

누다락은 푸른 바다빛에 싸여있고,

풀과나무엔 천연의 향기가 풍기네.

호탕하게 웃노니, 안개 물결 속에,

떠 있는 바다가 흥취 더욱 크구나.

(시의 해설입니다)

 

 

 

 

정자 곁에는,

조그마란 두칸 규모의 오래된 창고가 함께 있으며,

 

 

 

 

낙동강가에 자리한,

매학정의 뒷모습을 담아봅니다.

 

예전엔 정자와 함께 "매강서원"도 잇었다고 하나,

1868년에 훼철이되어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소박하기 그지없는 정자,  구미의 "매학정" 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