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성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주택인 "수성리 중매댁(水成里 中梅宅)"을 찾았습니다.

 

"성주 수성리 중매댁(星州 水成里 中梅宅)"은,

경상북도 시도민속문화재 제86호로 지정되었으며,

 

 

 

 

수성리 중매댁(水成里 中梅宅)은,

현소유자인 정발(鄭渤)의 할아버지 정재철(鄭在哲)이 1903년(광무 7년)에 건립한 살림집으로,

 

 

 

 

수성리 중매댁(水成里 中梅宅)은 집이 완성되기까지 12년 간이 소요되었다 하며,

그 점은 묵서된 상량기문이 있어 알 수 있는데,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대문간채는 1903년에 상량했고,

고방채는 1911년에 창건한후 이듬해 중건(重建)했다 하며,

안대문채는 1915년에 상량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면 6칸 사랑채는 공간활용 극대화 목적의 대청이 눈에 들어오는데,

 

 

 

 

사랑채의 마루 앞에는 분합문인 들어걸개창을 올려 놓아,

멀리 회연서원과 가야산 자락이 들어오며,

 

 

 

 

사랑채의 방문에서는 문위에 작은 창을 내어둔 조선후기의 양식이 엿보이며,

 

 

 

 

좌측 두칸 마루, 두칸의 방, 1칸의 방, 1칸 방으로 구성된 사랑채는 전면에 앞퇴를 내고 툇마루를 내었는데,

오른쪽 세번째의 쪽마루가 놓인 1칸의 방은 전면으로 돌출되어 있으며,

 

 

 

 

사랑채 평면은 2칸이 넘는 긴 마루를 중심으로 우측에 2칸통 사랑방과 마루가 계속되며,

앞에 툇마루가 있고 뒤쪽으로는 뒷방과 툇마루가 있고,

 

 

 

 

사랑채의 우측 옆에는 안채로 들어가는 문이 있어,

 

 

 

 

안채는 면이 고운 화강석 다석켜의 높은 댓돌 위에 방형 주초에 모기둥을 세운 민도릿집으로,

평면 구성은 "T"자형인데 안방에 이어 찬방을 돌출시켜 변형이 생겼지만,

이 점이 이 집의 특색이라 할수 있으며,

대청 2칸, 좌측에 안방·부엌·찬방이, 우측엔 건넌방·갓방·작은 부엌 순으로 자리해 있습니다.

 

 

 

 

고방채는 방형 4칸의 고방을 중심으로,

좌측에 마구간과 뒤주가 각 1칸 그리고 우측에 방앗간과 헛간이 있으며,

판벽한 뒤주 뒤편에 내측(內厠)이 있고,

 

 

 

 

1칸의 아담한 마구간은 주인 없이 땔감만 놓여 있습니다.

 

 

 

 

고방채와 사랑채 뒤편쪽에서 보이는 안채의 모습으로,

수성리 중매댁(水成里 中梅宅)은 성주지방에서 보기 드물게,

화강암으로 2m높이로 축대를 쌓은 후 그 위에 건립한 특이한 건물로,

 

 

 

 

이곳을 중매댁이라고 명명한 것은,

정발의 조모(祖母)가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中梅)에서 시집을 왔기 때문에 중매댁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참고로 칠곡의 "매원마을"은 안동 하회마을이나 경주 양동마을에 비해 다소 덜 알려진 민속마을이지만,

조선시대 영남의 3대 대촌마을 중에 하나에 드는 민속마을 입니다.

 

 

 

 

안채 에서도 겨울의 추위를 막기 위하여 미닫이와 여닫이를 함께둔 이중창이 보여,

조선말기의 주택에서 많이 보이는 양식이며,

 

 

 

 

안채의 처마 아래에는 대나무를 가로로 길게 걸어 두었는데,

아마도 무엇을 말리기위한 용도로 보여집니다.

 

 

 

 

조선 말기의 주택으로 일반적으로 볼수 있는 고택이지만,

오랫동안 정성들여 지은 살림집으로,

사랑채 마루에 있는 감실(사당 안에 신주를 모셔 두는 장)과 부엌 앞쪽을 막아 둔것,

마구간 좌측 처마 아래에는 낮은 담으로 가려서 사랑채에서의 시선을 피하는 등의,

20세기 초엽의 한 사례를 보이는 살림집을 살펴볼수 있는곳으로,

경상북도 성주의 고택 문화재인 "수성리 중매댁(水成里 中梅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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