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군 수륜면 수륜리에 있는 조선후기 고택인,

"죽백고택(竹栢古宅)"을 찾았습니다.

 

성주 죽백고택(星州 竹栢古宅)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02호로 지정되었으며,

사랑채와 안채가 가각 "一"자형의 건물로 전후로 서 있어,

고택은 후손이 살지 않고 비어 있으며,

 

 

 

 

죽백고택의 명칭에 나오는 죽백(竹栢)의 의미는,

순천박씨 성주입향조로 고려말 개성판윤을 지낸 판윤공(判尹公) 박가권(朴可權)이,

낙향하여 주위에 대나무와 잣나무 등을 많이 심어 터전을 닦았다 하여

후세사람들이 죽백선생(竹栢先生)이라 불렀다고 하며,

 

 

 

 

안채 앞에 서있는 사랑채는,

중앙에 마루를 두고 왼쪽에는 1칸의 온돌방을 두었고,

 

 

 

 

마루의 오른쪽엔 2칸의 방을 들여,

중앙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의 구조를 보이고 있고,

 

 

 

 

2칸방의 마루가 있는곳은,

문짝 네개가 죽 잇달아 달린 사분합문(四分閤門)을 두어,

문을 접은후 들어 열수있게 되어 확장성을 더했으며,

 

 

 

 

2칸의 방에는 2층 구조의 벽장이 있고,

제법 너른 공간을 보여 줍니다.

 

 

 

 

고택은 조선시대 양반가의 기본적인 구성 형태가 되는,

사랑채와 안채 그리고 대문채, 고방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우측에도 건물이 있어 튼 "ㅁ" 자를 이루어 안마당을 감싸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남아 있지 않으며,

 

 

 

 

사랑채 뒤에는 마당옆의 우물이 있고,

정면 4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안채가 자리하고 있어,

 

 

 

 

안채의 평면구성은 사랑채와 닮아 있어,

중앙의 한칸은 마루를 두고,

 

 

 

 

왼쪽에 한칸의 방을 들였는데 건너방으로,

전면에 있는 반칸의 퇴간은 한칸을 올려 마루를 두었으며,

 

 

 

 

오른쪽엔 안방을 두고 곁에는 부엌을 배치했으며,

 

 

 

 

순천박씨 성주 입향조로 고려말 개성판윤을 지내며 개성에 살았던 박가권(朴可權)은,

고려 나라가 없어지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켜,

1392년(조선 태조2년)에 남쪽으로 내려와 가야산으로 들어 갔는데,

고령읍에서 성주고을로 들어가면서 마음에 드는 마을이 나오게 되어서,

이곳에 터전을 일구어 살면서 이름을 수륜동으로 지었으며,

1395년에 사당을 일으키고는 이름을 죽백사라고 하였고

1426년 이곳에 자리 잡은지 33년만에 세상을 떠났는데,

저서로는 "죽백리선생실기(竹栢里先生實紀)"가 전하고 있으며,

 

 

 

 

죽백고택은 보수와 개축 등으로 건축물 등의 연원(年源)이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입향한 당대에 건립된 이후 600여 년 동안 세거(世居)한 역사를 담고 있는데,

안채의 건너방 우측에 퇴간을 설치한 평면적인 특징 및 살림채 보다 건립 연대가 이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안채의 동쪽 뒤편에는 높은 축대 위에,

사각형의 토석(土石) 담장을 둘린 일곽 내에 사당(祠堂)이 위치하고 있어,

 

 

 

 

사당(祠堂)에는 입향조 박가권(朴可權)의 위패를 모셨다고 합니다.

 

 

 

 

이 고택은 역사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특별한 역사성을 부여하기는 어렵지만,

윤동에서 600여 년 동안 세거하여 온 순천박씨 판윤공파의 종택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곳으로,

 

성주군 수륜면의 윤동마을을 찾으시면,

마을 입구에는 박가권(朴可權)의 후손이 남긴 "충신문(忠臣門)"있고,

고택 체험을 할수 있는 "사우당 고택"도 함께 찾아 볼수 있는곳으로,

경북 성주의 고택 문화제 "죽백고택(竹栢古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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