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부지리에 있는,

고대/남북국시대인 통일신라의 경덕왕의 무덤인 "경덕왕릉(景德王陵)"을 찾았습니다.

 

경주 경덕왕릉(慶州 景德王陵)은 사적 제23호로 지정 되었으며,

외형상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 지름 약 22m, 높이 약 6m의 크기이며,

 

 

 

 

경주 내남면 부지리의 마을 가장자리로 들어서서,

안내문을 따르면 야트막한 야산을 따라 송림이 있는 길이 나오고,

 

 

 

 

얼마지 않아 솔밭길이 끝나면 경덕왕릉(景德王陵)이 자리하고 있어,

 

 

 

 

경덕왕릉(景德王陵)은 신라 제35대 경덕왕(景德王, 재위 742년~765년, 김헌영)을 모신 곳으로,

구릉 경사면의 흙을 편평하게 깍아 축조했으며 흙을 둥글게 쌓아 올렸으며,

맨 아래에 지대석을 놓고 면석과 기둥 역할을 하는 탱석을 교대로 세우고,

탱석 두 칸 건너 하나씩 무인복을 입고 무기를 든 십이지신상을 돋을새김해 놓았습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경덕왕은 재위 24년에 승하했는데,

모지사(毛祗寺) 서쪽 봉우리에 장사지냈다고 하였고,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처음 경지사(頃只寺) 서쪽 언덕에 장사 지내고 돌을 다듬어 능을 만들었다가(鍊石爲陵),

뒤에 양장곡(楊長谷) 가운데로 이장했다고 전하고 있어,

지금 전하는 경덕왕릉의 위치와 문헌기록의 일치여부는 확실치 않으나,

돌을 다듬어 능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둘레돌(호석)을 의미 등으로 추정할수 있으며,

 

 

 

 

경덕왕(景德王, 재위 742년~765년, 김헌영)은 효성왕의 친동생으로,

왕위를 계승하여 국가의 제반제도를 중국식으로 개편하고 지방제도를 완비 하였으며,

굴불사와 불국사를 창건하였으며 황룡사 대종과 성덕대왕 신종도 만들었습니다.

 

 

 

 

능의 면석과 탱석 위에는 갑석(甲石)이 놓여 있고,

이러한 둘레돌구조는 통일신라시대 왕릉이 가장 정비된 형식으로,

둘레돌에서 밖으로 1.3m 떨어진 곳에는 높이 175㎝의 돌기둥 40개를 세워 돌난간을 둘렀으며,

 

 

 

 

능 하부 주위에는 봉분을 보호하기 위한 둘레돌(護石)이 설치되어 있는데,

둘레돌은 목조건축물의 석조기단(石造基壇)과 같은 형태로 되어 있어서,

가장 아래에 지대석(地臺石)이 있고 그 위에 높이 89㎝, 너비 120㎝의 면석(面石)이 놓였으며,

 

 

 

 

면석 사이사이에는 뿌리가 고분 안으로 길게 뻗어 면석과 봉분을 지탱하기 위한 탱석(橕石)을 배치하였는데,

탱석의 앞면은 면석보다 약간 앞으로 나와 있으며,

탱석은 두 칸 건너 하나씩 무복(武服)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는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능 앞에는 안상문(眼象文)이 새겨진 높은 석상(石床)이 놓여 있으나,

그밖에 통일신라시대 왕릉에서 볼 수 있는 돌사자·문인석(文人石)·무인석(武人石)과 같은 석조물은 보이지 않으며,

둘레돌의 세부수법이나 여기에 새겨진 십이지신상의 조각수법을 신라 하대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

이 능이 경덕왕의 능이라는 점에 의문을 갖는 견해도 있습니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의 능묘로서 특이한 묘제(墓制)를 보여주는 능으로,

남북국 통일신라의 경덕왕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어,

그의 생과 업적 등을 되돌아 볼수 있는 곳으로,

경주의 왕릉인 "경덕왕릉(景德王陵)"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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