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경주시 교동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제17대 내물왕의 능인 "내물왕릉(奈勿王陵)"입니다.

 

내물왕릉(奈勿王陵)을 찾다보면 경주 향교(鄕校)를 지나게 되고,

 

 

 

 

능은 사적 제19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경주 계림의 경내에 있어,

이곳은 첨성대에서도 건너로 보이는 곳이기도 하며,

월성(月城)으로부터 서북쪽으로 220m 떨어져 있습니다.

 

 

 

 

계림을 지나 안내문을 따라 이어져 있는 길을 따르면,

 

 

 

 

여러기의 큰 무덤이 보이고,

 

 

 

 

사적 제188호인 내물왕릉(奈勿王陵)을 만나게 되며,

밑지름 22m에 높이 5.3m의 규모이며,

형태는 흙을 올려 만든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서,

봉분 밑둘레에 자연석이 드문드문 돌아가며 보이고 있어 둘레돌(護石)을 돌렸음을 알 수 있으며,

 

 

 

 

능이 평지에 마련된 것으로 보아,

내부는 나무로 만든 덧널 위에 냇돌을 올려쌓아 만든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정식으로 발굴되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으며,

다만 경주시내 돌무지덧널무덤의 묘역이 봉분과 둘레돌 그리고 가장자리에 돌린 도랑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돌무지덧널무덤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내물왕은 김씨 왕으로는 두 번째로 왕위에 올랐는데,

이후 김씨 성에 의한 독점적 왕위계승을 이루는데 일조를 하였으며,

마립간이란 왕 명칭을 처음 사용하였고,

중국 전진(前秦)과의 외교관계를 통해 선진문물을 수입 하는등,

백제와 왜의 연합세력이 침입하자 고구려 광개토대왕에 도움을 요청하여 위기를 모면 하였으며,

국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 입니다.

 

 

 

 

이 능을 내물왕릉으로 추정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아서,

5세기 초부터 6세기 전반대까지 대체로 왕릉이,

경주시내 평지에 돌무지덧널무덤 양식으로 거대한 규모로 축조된다는 점과 함께,

"삼국유사"의 왕력(王曆)편에 내물왕릉이 “점성대(占星臺) 서남쪽에 있다”는 기록과 더불어,

각기 박씨·석씨·김씨계의 시조왕들이 묻혀 있는 오릉(五陵)에 내물왕릉도 부가되어 전승되어 왔다는 점이며,

삼국사기에는 내물왕의 장지에 관한 기록이 없으나,

삼국유사에는 위치가 기록 되었으며 지금의 위치와 일치하는 것으로,

초기의 왕릉으로서는 비교적 형식을 잘 갖추고 있습니다.

 

 

 

 

삼국시대인 신라 제17대 왕이며,

신라의 김씨왕으로의 세습을 이루었으며 국가로서의 기반을 다졌던 왕으로,

인근에는 근자에 복원된 월정교와 교동의 최씨고택이 있으며,

더불어 건너에 있는 첨성대까지 함께 돌아 볼만한 곳으로,

경주의 왕릉인 "내물왕릉(奈勿王陵)"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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