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경주시 동방동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5대 신무왕의 능인 "신무왕릉(神武王陵)" 입니다.

 

경주 신무왕릉(神武王陵)은 사적 제185호로 지정 되었으며,

면적은 3만 6560㎡이고 무덤의 지름은 15m, 높이 3.4m로 신라왕릉으로 알려진 무덤 중 규모가 가장 작은데,

신무왕의 성은 김씨(金氏)이고 이름은 우징(祐徵) 입니다.

 

 

 

 

신무왕릉(神武王陵)은 산기슭의 약간 경사진 지점을 이용하여 만든 원형의 토분(土墳)으로,

근자에 세운듯한 석물들이 있으나 원래는 별다른 표식의물(表飾儀物)이 없었다고 하며,

 

 

 

 

신무왕(神武王)은 신라 제43대 희강왕의 사촌동생으로,

어머니는 진교부인(眞矯夫人)이고 왕비는 진종부인(眞從夫人)이며,

왕위쟁탈전이 심하던 때인 839년에 청해진대사(淸海鎭大使) 장보고(張保皐)의 도움으로,

경주로 쳐들어가 민애왕(閔哀王)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나,

그해에 병으로 승하함으로써 재위 3개월의 단명 왕이 되었습니다.

 

 

 

 

능 옆에는 신무왕릉(神武王陵)의 표지석이 서있는데,

세운지 오래지 않아 보이고,

 

 

 

 

능의 앞에는 석상(石床)이 놓여 있는데 이 또한 오래지 않아 보입니다.

 

 

 

 

이 능이 신무왕릉이 아니고,

경주시 충효동 산 7의 1에 위치하고 있는 사적 제21호 김유신묘(金庾信墓)나,

사적 제24호인 진덕여왕릉(眞德女王陵)이 양식이나 연대로 보아,

오히려 신무왕릉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죽은 뒤 제형산(弟兄山) 서북쪽에 장사하였다"는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이 남아 있어,

이곳으로 신무왕릉(神武王陵)으로 비정하고 있으며,

무덤의 외부 모습은 흙으로 덮은 둥근 봉토분인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

아무런 시설이 없는 일반민묘 형태로 단순 하기만 합니다.

 

 

 

남북국 시대인 통일신라의 묘제가 구성된 시대의 왕릉이나,

흙을 올려 만든 거대한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을 보아 오다가,

왕릉으로 보기에 소탈해 보이기 까지 하는 능으로,

경주의 왕릉인 "신무왕릉(神武王陵) "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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