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에 있는 신라시대의 삼층석탑인,

"미탄사지 삼층석탑(味呑寺地 三層石塔)" 입니다.

 

보물 제1928호로 지정된 "경주 미탄사지 삼층석탑(慶州 味呑寺地 三層石塔)"이 자리하고 있는,

"미탄사지"는 통일신라시대 왕경 내에 형성된 도시가람으로,

지리적 입지 상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사찰일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이는 왕경의 중심적 위치에 자리하고 있고 문헌자료와 발굴된 유물로 확인이 되고 있는데,

발굴조사과정을 통해 미탄(味呑)명 기와가 수습됨으로써 삼국유사에 기록된 미탄사가 이곳임이 밝혀졌고,

추정 금당지 및 강당지를 비롯해 남문지 등 사역의 일단이 확인이 되었습니다.

 

 

 

 

미탄사지 삼층석탑은 높이 6.12m의 규모로 총 35매의 부재로 구성되어 있는데,

1980년 이전까지는 도괴로 인하여 기단부와 탑신부의 일부 부재가 소실된 채로 방치되어 있었으나,

1980년에 남은 부재들을 모아 복원을 하였으며 소실된 부재는 새로운 부재를 치석하여 조립 하였는데,

이때, 신라석탑 기초부의 형식 등이 파악되어 아직까지 신라석탑의 기초부를 논할 때 이를 근거자료로 활용하고 있으며,

 

 

 

 

석탑 옆에는 보물 제1928호 임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있어,

2016년에 보물로 승격이 되었기에 비석은 어제 세운듯 깨끗하며,

 

 

 

 

석탑 앞에는 불교 행사에 사용되는 일종의 판석으로 석탑이나 석등 앞에 놓여,

불을 켜거나 향을 피우고 음식을 차려놓는 판돌인 배례석(拜禮石)과,

석등의 하부로 보이는 석물이 있으며,

 

 

 

미탄사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삼국유사" 기이 제1 신라시조 혁거세왕에 "최치원은 바로 본피부 사람이다.

지금의 황룡사 남쪽 미탄사의 남쪽에 옛 터가 있다.여기가 최치원의 옛집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맞는 것 같다.

(致遠乃本彼部人也 今皇龍寺南 味呑寺南有古墟 云是崔侯古宅也 殆明矣)" 라는,

기록을 통해 그 위치를 추정할 수 있을 뿐이며,

발굴조사를 통한 출토유믈을 통해서 볼 때 중심연대는 8~9세기로 보이며,

고려시대까지 계속해서 중건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미탄사지 삼층석탑(味呑寺地 三層石塔)은,

파손 및 결손된 부재를 신재로 보강 및 보충하여 신재와 구재 간 이질감이 있지만,

신라 왕경 내에 현존하는 유일한 석탑이자 최초로 기초부 조사를 실시한 석탑으로,

그 형태가 정연하고 적절한 비례감을 지니고 있으며,

 

 

 

 

이곳의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양식이 변화되는 모습으로 과도기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 석탑으로,

이 석탑이 제작된 것으로 짐작되는 9세기 혹은 10세기 초에는 앞 시대에 비하여 석탑의 크기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흐름과는 달리 비슷한 시기의 작품에 비해 드물게 규모가 큰 작품이며,

 

 

 

 

미탄사지 삼층석탑(味呑寺地 三層石塔)은,

일반적인 석탑의 판축기법과 달리 잡석과 진흙을 다져 불을 지피는 방식으로,

한 단이 완성될 때마다 굳히면서 쌓아나가는 기초부의 판축 축조방식이나,

기단부 적심 내의 지진구 출토 등에 있어서 특이하고 학술적인 가치가 있는 새로운 자료를 지니고 있습니다.

 

 

 

 

황룡사지 인근에서 찾을수 있는 미탄사지(味呑寺地)에 있는 석탑으로,

비례가 적절하여 장중한 느낌이 들게하는 탑신라시대의 삼층석탑인,

"경주 미탄사지 삼층석탑(慶州 味呑寺地 三層石塔)"입니다.

 

다음검색

저작자 표시 컨텐츠변경 비영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