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0대 정강왕의 능인,

"경주 정강왕릉(慶州 定康王陵)" 입니다.

 

"경주 정강왕릉(慶州 定康王陵)"은 사적 제186호로 지정 되었으며,

 

 

 

 

능은 남산 동쪽 송림 속에 있어,

이 능은 경주 남산의 북동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 끝 부분에 자리잡고 있는데,

통일전 인근에 있어 찾는데 어려움은 없으며,

 

 

 

 

왕릉에는 별도의 주차장이 없기에 통일전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송림의 숲길을 따라 조금만 들어가면,

 

 

 

 

정강왕릉(定康王陵)을 만나게 되어,

능의 지정면적은 3만 5,702㎡이고 무덤의 지름은 15.7m에 높이는 4m이며,

 

 

 

 

신라 제50대 정강왕(定康王)의 성은 김씨이고 이름은 황(晃)이며,

경문왕의 둘째아들이자 헌강왕의 아우로,

886년 7월에 왕이 되어 887년 7월에 병으로 승하 하였으므로 만 1년간 왕으로 있었으며,

승하한 뒤 보리사(菩提寺) 동남쪽에 장사하였다는 기록에 따라 이곳으로 비정하고 있습니다.

 

 

 

 

이 왕릉의 형식은 선왕 헌강왕릉과 같으나,

별로 치적(治積)이 없음에도 전왕(前王)과 같은 형식의 왕릉을 만들었음은,

태평성세의 여세를 따라 그의 형의 왕릉형식을따른 듯하며,

보리사 동남에 장사 지냈음도 모두 전왕(前王)의 뒤를 따른 것으로 여겨지며,

 

 

 

 

왕릉 앞에는 1매의 판석으로 된 상석이 있고,

그 앞에 다듬은 장방형 화강석으로 축조한 석단이 있으며,

 

 

 

 

무덤의 외부모습은 둥글게 쌓아올린 봉토(封土) 밑부분을 3단으로 쌓아,

무덤의 보호석으로 하였는데 모두 가공한 장대석(長臺石)으로 축조 하였으며,

하단의 지대석(地臺石)은 보다 넓게 하였고 그 위에 2단의 석축을 쌓았는데,

최상면에 올려놓는 갑석(甲石)은 원래 없었으며,

 

 

 

 

내부는 발굴되지 않아 확실치 않으나 시기적으로 보아,

형의 무덤인 제49대 헌강왕릉과 같은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치적(治積)도 없이 1년의 재위로 생을 마쳤지만,

평화로웠던 시기였기에 나름 왕릉의 격식을 갖춘 능으로 남게된 곳으로,

인근에는 서출지와 헌강왕릉이 가까이 있으니,

함께 돌아볼만한 곳으로 "경주 정강왕릉(慶州 定康王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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