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경주시 조양동에 있는,

신라 제32대 효소왕의 능인 "효소왕릉(孝昭王陵)"입니다.

 

"경주 효소왕릉(慶州 孝昭王陵)"은 사적 제184호로 지정 되었으며,

형제산의 남쪽 산기슭에 자리하며 이 왕릉 동쪽에는 제33대 성덕왕릉이 있는데,

1730년(영조 6)에 김씨 일족에 의해 성덕왕릉의 형제 능이라는 이유로,

효소왕릉을 이곳으로 비정한 이래 따르고 있습니다.

 

 

 

 

효소왕의 성은 김씨이고 이름은 이홍(理洪, 또는 理供)으로,

제31대 신문왕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신목왕후(神穆王后)이며,

692년에 즉위하여 702년에 승하할 때까지 10년간 재위하면서 모든 제도를 정비하고 당나라·일본 등과 수교 하였으며,

왕이 승하한 뒤 망덕사(望德寺) 동쪽에 장사 지냈다고 하며,

 

 

 

 

능의 앞에는 세운지 오래지 않아 보이는 "효소왕릉(孝昭王陵)"의 표지석이 있고,

 

 

 

 

아담한 능의 구모에 맞게 작은 석상(石床)이 놓여 있는데,

현재의 왕릉은 1929년 4월과 1969년 11월에 도굴을 당했다고 하며,

두 번째 도굴로 인해 돌방의 규모가 드러났는데 길이 3m에 너비는 1.5m, 높이가 1.5m 의 크기 였으며,

돌방에 사용된 돌은 화강석 이었으며 돌방 안에 부장된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왕릉의 크기는 지름 10.3m, 높이 4.3m, 둘레 57.5m이며,

외부 모습은 흙으로 덮은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이며 묘제는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으로,

밑둘레에는 40∼50㎝의 자연석을 사용하여 왕릉을 보호하기 위해 둘레돌을 1m정도 쌓아 올렸으나,

지금은 둘레돌이 대부분 묻혀 있습니다.

 

 

 

 

효소왕(孝昭王)의 재위시기는 신라가 3국을 통일한 후 안정과 번영으로 향하던 때여서,

특기할 만한 치적이 없다 하더라도 능이 빈약하기만 한데,

 

 

 

 

 

능묘제도의 발달과정으로 보아 선대인 신문왕릉보다는 발달되어 있어야 하는데,

매우 초기적인 왕릉의 형식을 보여주고 있는 곳으로,

경주의 왕릉 "효소왕릉(孝昭王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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