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에 있는 유적인,

"경주 표암(慶州 瓢巖)"을 둘러 봅니다.

 

"경주 표암(慶州 瓢巖)"은 경상북도 기념물 제54호로 지정 되었으며,

동쪽으로는 명활산성(明活山城)이 남쪽은 남산이 있고,

서쪽은 선도산(仙桃山)이 북쪽은 소금강산(143m)이 있는 전형적인 분지형태로,

이 산은 본래 북악으로 불리던 명산으로 신라의 4영산중의 하나이며,

산의 정상에는 이차돈(異次頓)과 관계있는 백률사(伯栗寺)가 있으며,

서쪽에는 굴불사지석불상이 있습니다.

 

 

 

 

표암(瓢巖)은 경주이씨 혈맥의 근원지인 동시에 신라 건국의 산실로서,

화백이라는 민주정치 제도의 발상을 보인 상서로운 곳으로,

탈해왕릉 곁으로 나있는 계단을 따라 오르면,

 

 

 

계단을 오르다 보면 1971년도에 세워진 건물들로,

이곳을 수호하는 알평시조의 묘우인 악강묘(嶽降廟)가 내려다 보이는데,

서기전 69년에 6촌장이 여기에서 모여 화백회의를 열고 신라건국을 의결 했으며,

 그 뒤 서기전 57년에 신라가 건국 되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계단을 오르면 담장을 두른 비각을 만나게 되고,

 

 

 

 

담장을 들어서면,

비석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둔 비각이 있어,

 

 

 

 

비각에는 "표암 유허비(瓢巖 遺墟碑)"가 있어,

순조4년(1804)에 좌의정 이경일이 현인을 공경하고 조상을 추모할 곳이라는 내용으로 비문을 짓고 ,

형조판서 이집두가 글씨를 쓰고 장령 이진택이 감독하여 비를 간립 하였습니다.

 

 

 

표암 유허비(瓢巖 遺墟碑)는 원래 표암앞을 흐르던 동천가에 있었으나,

홍수의 피해를 입게되어 1879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세웠으며,

 

 

 

 

유허비(遺墟碑)란 일반적인 비석과 달리,

나라에 큰 공을 세우는등 공적인 일로 명예를 떨친 인물을 후손에 알려,

그 뜻을 기리고자 세우는 비석을 말 합니다.

 

 

 

 

유허비에서 나오면 담장 저만치에는,

산신 등에 대한 졔를 올리는듯한 제단이 따로 마련되어 있고,

 

 

 

 

표암 유허비(瓢巖 遺墟碑)에서도 경주 시내쪽으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비각의 뒤편에는 광림대(光臨臺)가 자리해 있어,

 

 

 

 

광림대 앞에는 비석이 한기 서있어,

 

 

 

 

비석에는 "경주이씨시조발원지(慶州李氏 始祖 發祥地)"라 써있어,

신라초 좌명공신 급량부대인 이공 휘 알평 서기전 117년 에 하늘에서 이곳에 내려왔다.

표암공은 신라육촌중 알천양산촌의 촌장으로 제일대혁게세왕을 추대하였고,

신라를 창건하신 어른으로볍흥왕때에 문선공 (文宣公)이라시호하셨고,

문열왕때에 다시 은열왕(恩烈王)이라 추봉하셨다.

원성왕이 사당을지어 친필로 대광보전(大光寶殿)이라는 사액을 내렸으나 견훤의 난으로 없어졌다.

 

 

 

 

광림대(光臨臺)는 1985년에 건립 하였으며,

 

 

 

 

광림대(光臨臺)는 석혈(石穴)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각으로,

 

 

 

 

"석혈(石穴)"은 신라6촌 가운데 근본이 되는 밑돌부라는 부명이 붙여진,

알천양사촌(閼川楊山村)의 시조 알평공(謁平公)이 하늘에서 내려와 처음으로 목욕한 곳으로 전해 오는데,

이곳은 경주이씨 혈맥의 근원지인 동시에 신라건국의 산실로서,

광명이세(光明理世)의 이념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큰 뜻을 밝히고,

신라의 화백회의가 시작된 유서 깊은 곳이라 하며,

 

 

 

 

삼국 유사에는,

"진한땅에 여섯촌이 있었는데 그 하나가 알천 양산촌이며 그곳의 촌장은 알평이었는데,

그는 하늘에서 표암봉으로 내려와 급량부 이씨의 조상이 되었다."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본래 일본 사람인 호공(瓠公)이 처음 동해에서 건너올 때 허리에 찬 표주박(瓠)을 이곳에 풀었는데,

그뒤 호공은 박혁거세를 도와 나라 건립에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고 하며,

BC 69년에 6촌장이 여기에 모여 화백회의를 열고 신라 건국을 의결했다고도 전해지며,

 

 

 

 

묘우인 악강묘(嶽降廟) 뒤편에는 바위들이 보여,

박바우산 이라고도 하는데 박바위는 "밝은바위"를 의미한다고 하며,

그림의 큰바위 바로 아래에는 2012년에 표암 "마애선각화"가 발견 되기도 하였는데,

당간 그림이 새겨져 있어 국내에서 유일하여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합니다.

 

 

 

 

경주이씨 혈맥의 근원지이며,

신라6부족 가운데 하나인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의 유래를 살펴볼수 있으며,

곁에 탈해왕릉이 있어 함께 찾아 볼만한 곳으로,

경주의 유적인 "표암(瓢巖)"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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