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삼구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인 "삼휴정(三休亭)"입니다.

 

"삼휴정(三休亭)"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 되었으며,

 

 

 

 

정자는 정면 4칸, 측면 1칸반의 팔작지붕 건물로,

임진왜란 때 영천지방에서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웠던 정세아(鄭世雅)의 증손인,

정호신(鄭好信, 1605~1649)이 자연을 벗삼아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인조 13년(1635)에 건립한 정자로,

 

 

 

 

정자의 처마 아래에는 "삼휴정(三休亭)"의 현판이 있어,

삼휴정(三休亭)을 세운 정호신(鄭好信, 1605~1649)의 자는 덕기(德基), 호는 삼휴(三休), 본관은 오천(烏川)으로,

17세때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형 섬기기를 부모처럼 하고 스승을 예우함이 모범 되었다고 하며,

조부인 호수 정세아가 살았던 곳에 정자를 짓고 그 풍경을 바라보면서,

"삼휴(三休)"란 시를 지었는데 이로 인해 삼휴당(三休堂)이란 당호가 생기게 되었으며,

그는 학문에 전념하는 한편 자연을 벗삼아 작사(作詞)하는 데 뜻을 두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정자의 평면구조는 중앙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으로,

마루 위에는 여러 편액(扁額)들을 볼수 있으며,

 

 

 

 

정자에 걸려 있는 원운(原韻)을 살펴보면,

이 정자는 여울가에 자리하고 있어 물소리가 베갯머리로 스며들었고,

주위는 마치 푸른 병풍을 둘러쳐놓은 듯이 수많은 봉우리가 이어져 경승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삼휴정(三休亭)의 오른쪽의 방은 열려 있어 들여다 보고,

 

 

 

삼휴정(三休亭)은 영천댐이 축조되면서 수몰당하는 운명에 놓여,

지금은 옛자리를 굽어보는 산비탈로 옮겨져 옛 정취를 찾아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는데,

1977년에 이곳으로 이건 하였습니다.

 

 

 

 

정자는 다락집으로 반육축(半陸築)되어 있으며,

기둥 가운데 앞줄의 5개만이 원주(圓柱)이고,

나머지는 육축(陸築:지면에 축조하는 일) 위에 초석(礎石)을 놓고 평주(平柱)처럼 세워져 있어,

평면의 4칸 가운데 중앙의 2칸이 대청으로 꾸며져 있고,

좌우 2칸에는 반칸의 전퇴(前退)를 두고 각기 1칸 크기의 방을 들였습니다.

 

 

 

 

영천댐의 건설로 옛정취를 잃어버린 정자로,

정호신(鄭好信)의 행적을 뒤돌아 볼수 있고,

외회공 종택과 오회당 그리고 하천재와 사의당이 인근에 있어,

함께 찾아 볼만한 곳으로 경북 영천의 정자인 "삼휴정(三休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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