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양전리 지리산 자락에 있는 암자인,

산청의 "정취암(淨趣庵)"입니다.

 

산청 9경 중 제8경인 정취암(淨趣庵)은,

대성산(593m)의 기암절벽에 자리한 사찰로 일출의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686년 의상 조사가 창건했다고 하는 정취암은 관음성지로 유명하며,

조계종 제12교구 해인사의 말사로 넓지도 크지도 않은 아담한 규모이며,

 

 

 

 

정취암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사찰의 주불전으로 금당 격인 원통보전(圓通寶殿)이 있어,

일반적인 사찰에서는 석가모니 불상을 본전불로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봉안하는 것이 대부분인것 처럼,

이곳 정취암에서도 "정취관음보살(正趣觀音菩薩)"을 본전불로 봉안하고 있으며,

 

 

 

 

"산청 정취암 목조관음보살 좌상(山淸 淨趣庵 木造觀音菩薩坐像)"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43호로 지정 되었으며,

18세기 중반경에 조성된 불상으로 연화좌에 앉은 관음보살좌상이 단독으로 봉안되어 있어,

1996년에 개금하여 전체적인 상태는 양호하며 50㎝정도 크기의 이 불상은,

등으로부터 서서히 굽은 자세에 머리를 앞으로 약간 숙이고 있으며 안정된 자세와 단아한 인상을 주고 있으며,

 

신라 헌강왕 2년(858년) 굴산 범일선사가 낙산사에 봉안했던 "정취관음보살상"을,

고려 고종 41년(1254년)에 명주성이 몽고병에 함락될 때,

야별초 10인과 사노인 걸승이 땅속에 묻어 난을 무사히 피하게 되었는데,

그 후 경주 기림사 주지스님인 각유선사가,

이 정취보살상은 국가의 신보이니 궁궐에 모실 것을 왕에게 아뢰어 왕의 명을 받아 궁궐에 모시게 되었는데,

고려 공민왕 3년(1354년)에 화경, 경신 두 거사가 정취사를 중건한 후,

궁궐에 봉안되어 있던 정취보살상을 정취사로 옮겨 봉안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원통보전의 옆에서는 정취암의 명물이라는 "쌍거북바위"를 볼수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데,

바위 위의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기어 가듯이 보이는 거북 바위로,

 

 

 

 

"영귀암(靈龜岩)"이라고도 불리는 쌍거북바위는 치성을 드리면 부부의 금실이 좋아지고,

자손이 없는 집안에는 자손이 생기고 가정은 화목해지고 사업도 번창하게 하는 영험이 있다고 합니다.

 

 

 

 

원통보전 뒤편에 나있는 계단을 오르면,

 

 

 

 

커다란 바위 아래에 소나무와 함께 자리한 "정취전(淨趣殿)"이 있어,

 

 

 

 

전각의 내부에는 커다란 바위 아래에 석불을 봉안하고 있으며,

이곳에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중 하나인 "정취보살(正趣菩薩)"을 모신듯 합니다.

 

 

 

 

정취전의 오른편에는 1996년에 세운 삼성각(三聖閣)이 있어,

 

 

 

 

정취암의 삼성각(三聖閣)은 다른곳과는 달리,

정취전과 같이 유리를 통하여 산신을 볼수있게 해두었는데,

삼성각은 산신(山神)·칠성(七星)·독성(獨聖)을 함께 봉안하고 있는 전각으로 "산신각(山神閣)"이라고도 하며,

 

 

 

 

자세히 보기위해 전각 뒤로 들어오니,

세심대 바위 아래에는 호랑이를 타고 앉아있는 산신이 봉안되어 있으며,

 

 

 

 

삼성각(三聖閣)의 내부에는 경상남도의 문화재자료 제243호인,

"산청 정취암 산신탱화(山淸 淨趣庵 山神幀畵)"가 있어,

탱화란 액자나 족자 형태로 만들어 법당에 걸어둘 수 있게 만든 불교그림을 말하며,

돋보이는 필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제작 연대는 조선 순조 33년(1833)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성각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도 일품여서,

 

 

 

 

산청군 신등면 일대가 한눈에 내어다 보입니다.

 

 

 

 

삼성각에서 내려와 정취전을 지나면,

 

 

 

 

맞배지붕의 아담한 전각으로,

1995년에 세운 응진전(應眞殿)이 있어,

 

 

 

 

응진전(應眞殿)은 석가모니의 설법장인 영산회상에서 유래한 전각으로,

부처님의 제자로 지혜와 신통이 뛰어난 열여섯분(16분)의 아라한인 십육 나한을 모신 전각 입니다.

 

 

 

 

응진전을 자나면 위로 오를수 있는 나무데크의 길이 나있어,

 

 

 

 

신라 문무왕 6년(686년)에 동해에서 아미타불이 솟아올라,

한 줄기는 금강산을 비추고 또 한 줄기는 대성산을 비추었는데,

이때 의상대사는 두 빛을 쫓아 금강산에는 원통암을 짓고 대성산에는 정취암을 건립한 것으로,

정취암 북쪽 약 4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율곡사가 있는데 율곡사는 원효대사가 651년에 창건했으며,

30여 년 차이를 두고 창건된 두 절에는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


율곡사에 거처하던 원효대사가 보리죽을 먹고 있는데 비해,

정취암에 있던 의상조사는 하늘에서 내려 준 공양을 받고 있었는데,

하루는 원효대사가 정취암으로 놀러 왔는데 점심시간이 되어,

“오늘 나도 천공(하늘에서 준 점심 공양)을 받아 함께 먹을 수 있겠네”라고 하면서 점심 공양을 기다리는 데,

때가 지나도 하늘에서 천녀(天女)가 내려오지 않자 원효대사는 그냥 돌아 갔다고 하며,

원효대가가 돌아가자 그때서야 천녀가 내려 왔기에 의상조사가 “왜 이제 오냐”고 묻자,

천녀는 “원효대사를 옹위하는 팔부신장이 길을 가로막아서 정취암으로 올 수가 없었다”고 대답 했다고 합니다.

이에 의상조사는 자신의 도량이 원효대사에게 미치지 못함을 깨닫고는,

그 다음부터 천공을 사양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길을 따르다 보면 산길로도 이어지며,

 

 

 

 

오르는 길은 그리 멀지 않으며,

곳곳에는 이곳을 찾은 이들의 공력으로 쌓아둔 여러가지 모양의 돌탑들도 볼수 있으며,

 

 

 

 

마침내 사각의 정자인 "만월정"을 만나게 되며,

 

 

 

 

만월정 앞에는 너럭바위가 있어 이곳에서 보이는 풍광도 일품여서,

 

 

 

소나무로 보이는 고사목 옆으로는 올라왔던 길이 내려다 보이고,

 

 

 

 

멀리 삼가면과 대의면 넘어로는,

의령의 한우산과 자굴산의 능선이 들어오며,

 

 

 

 

아래로는 신등면의 전경이 손에 잡힐듯 들어와,

이곳이 일출의 명소임을 느끼는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산청군 신등면 대성산의 8부능선인 해발 450m 자리하고 있으며,

바다가 아닌 내륙의 일출명소로도 이름난 곳으로,

기암절벽에 자리한 사찰인 산청의 "정취암(淨趣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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