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팔공산에 있는,

통일신라 초기의 석굴인 "아미타여래 삼존석굴(阿彌陀如來三尊 石窟)"입니다.

 

군위 아미타여래 삼존석굴(軍威 阿彌陀如來三尊 石窟)은,

국보 제109호로 지정 되었으며,

서기 700년경에 만들어진 삼존석불이 모셔져 있는 곳으로,

 

 

 

 

제2의 석굴암이란 명칭을 가지고 있는 이곳은,

주변에 사찰과 서원이 있슴에도 주차에는 어려움이 있는 곳으로,

 

 

 

 

아미타여래 삼존석굴을 찾아 경내로 들어오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58호인,

"군위 삼존석굴 석조비로자나불좌상(軍威 三尊石窟 石造毘盧遮那佛坐像)"을 만나게 되어,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불상 높이 74㎝로,

3단의 방형 연화대좌 위에 안치되어 있으며,

대좌의 상대석과 중대석은 근래에 새로 만든 것이고,

하대석도 연화문(蓮花文 : 연꽃무늬)이 조식(彫飾 : 잘 다듬어 꾸밈.)되어 있기는 하지만,

심하게 마모되었으며 일부는 파손된 상태인데,

광배(光背: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는 남아 있지 않으며,

 

 

 

 

청정한 법신불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은,

항상 고요와 빛으로 충만한 상적광토에서 설법한다고 하며,

이 상은 외모에서 방형의 석재를 쌓아 놓은 것 같은 괴체감(塊體感)이 보이고,

신체에 비해 머리가 크고 무릎 폭이 좁아 불안정한 비례를 보이고 있으며,

방형 대좌를 구비한 점 등에서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볼 수 있습니다.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지나면,

정면 5칸 측면3칸의 팔직지붕을 하고있는 커다란 전각이 있어,

"화엄경"의 주불(主佛)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본존으로 모시는 법당인 비로전(毘盧殿)이 있고,

 

 

 

 

앞 마당에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41호인,

"군위 삼존석굴 모전석탑(軍威 三尊石窟 模塼石塔)"가 있어,

"군위 남산동 단층모전석탑" 이라고도 불리는 석탑으로,

1층 기단(基壇) 위에 1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특이한 형태로,

전탑(塼塔:흙벽돌로 쌓아만든 탑)을 모방하여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인데,

지금까지 보아오던 탑의 형식에서 벗어나 원형이 궁굼할 정도의 모습으로 서있어,

 

 

 

 

기단은 네 면마다 모서리에 2기 그리고 그 사이에 3기 등 5기씩의 기둥 모양을 조각 하였고,

탑신의 몸돌은 20여 단의 일정치 않은 돌을 포개어 쌓아 올렸으며,

지붕돌은 전탑에서와 같이 아래·윗면이 층단을 이루고 있는데,

밑면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고 윗면에도 다시 여러 단의 층단을 쌓아 점차 줄어들게 하였습니다.


지붕돌 한가운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보주(寶珠:연꽃봉오리 모양의 장식)가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 있으며,

탑신을 다시 쌓으면서 본래의 모습을 잃었으나 비교적 탑의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어 소중한 가치를 지닌 탑으로,

고대 남북국시대인 통일신라때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석탑 한쪽의 담장 아래에는,

초석을 비롯한 많은 양의 옛 석재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모여 있습니다.

 

 

 

 

모전석탑(模塼石塔)옆에는,

아미타여래 삼존석굴(阿彌陀如來三尊 石窟)을 참배할수 있게 자리가 마련되어 있으며,

 

 

 

 

오래전 이곳을 찾았을때 석굴에 올랐던 기억이 있어,

석굴(石窟)로 오르기 위해 계단앞에 이르니,

 

 

 

 

출입 제한 이라는 안내문과 함께,

 

 

 

 

 

문을 걸어두어 가까이 볼수 없게 해두어 아쉬움이 남았으며,

어쩔수 없이 저만치 떨어져서 바라볼수 밖에 없습니다.

 

 

 

 

아미타여래 삼존석굴(阿彌陀如來三尊 石窟)은,

통일 신라 초기의 화강암 석굴로,

굴의 높이는 4.25미터에 깊이는 4.3미터 이고,

석굴의 입구는 원형이며 안쪽의 평면은 정사각형이고 천장은 활등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1962년에 발견·조사되면서 제2의 석굴암이란 칭호를 받기도 했는데,

거대한 자연암벽을 뚫어 만든 것으로 석굴 입구는 원형에 가깝고,

그 안쪽에 화강암 삼존불상이 안치되어 있어,

 

 

 

 

지상으로부터 약 6미터 높이의 천연적인 암벽을 뚫어 만든 석굴에 안치된 이 석불은,

중앙에는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 높이 2.88미터이며,

본존불은 사각형의 대좌(臺座) 위에 양 발을 무릎 위에 올리고 발바닥이 위로 향한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이며,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머리(육계)가 있으며,

얼굴은 몸에 비하여 큰 편으로 삼국시대 불상에서 보이던 친근한 미소 대신 위엄있는 모습을 하고 있고,

옷은 얇게 걸치고 있어서 당당한 신체의 굴곡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으며,

옷자락은 넓은 무릎을 거쳐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 아래까지 길게 늘어져 있는데,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손가락이 땅을 향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습니다.

 

 

 

 

오른쪽에 모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1.8m의 크기이고,

왼쪽에는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이 높이 1.8m 이며,

같은 양식을 보여주는 좌우의 보살상은 각각의 머리에 작은 불상과 정병이 새겨진 관(冠)을 쓰고 있는데,

가슴 앞에는 목걸이를 걸치고 팔에는 팔찌를 끼고 있으며,

옷은 길게 U자형의 주름을 그리면서 내려오고 있으며,

이들 보살상은 날씬한 몸매에 어울리는 신체 비례와 목·허리·다리 3부분을 비틀고 있는 모습에서,

당시 새롭게 수용된 중국 당나라 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석굴 안에 모신 불상의 모습이 어두운 탓에 제대로 보여지지 않아,

참고로 자료 사진을 가져와 보았습니다.

 

 

 

 

큰 규모의 석굴은 아니지만,

자연암벽을 뚫고 그 속에 불상을 안치한 본격적인 석굴사원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석굴양식이 신라에서도 시도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를 볼수 있는곳으로,

경북 군위의 국보 문화재인 "아미타여래 삼존석굴(阿彌陀如來三尊 石窟)"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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