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 203-2번지에 있는,

"함계정사(涵溪精舍)"입니다.

 

영천시 임고면 선원마을에 있는 함계정사(涵溪精舍)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30호로 지정 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정세아(鄭世雅)의 현손인 정석달(鄭碩撻,1660∼1720)이,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건물이며,

 

 

 

 

함계정사는 문이 굳게 닫혀있어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담장을 기웃거리며 볼수밖에 없는데,

정면 3칸에 측면 1칸반 규모로 맞배지붕의 건물로,

중앙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의 구조이며,

 

 

 

 

함계(涵 溪) 정석달(鄭碩達,1660~1720)이 만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함계정사기(涵溪精舍記)"에 보면,

1702년 43세되던 때에 함계정의 건립을 시도하였으나 재력이 부족하여,

우선 "안락재(安樂齋)"라는 소재(小齋)를 건축하였고,

그 후로도 수삼차에 걸쳐 역사를 시작하였으나 빈번히 우환질고(憂患疾苦)로 정지 되었다고 자술하고 있으며,

 

 

 

 

또한 "함계정사기(涵溪精舍記)"의 말미에 보면,

그가 말년에 또 한 번 공사를 시작한 듯 하나 역시 끝을 맺지 못하고 타계한 것을 알 수 있는데,

함계공의 손자인 죽비(竹扉) 정일찬(鄭一鑽,1724~1797)의 행장에 보면,

1779년(정조 3년)에 함계공 만년의 소망을 준유의(遵遺意)하여,

함계지상에 양심당(養心堂) 즉 함계정사를 창건하였다고 기록이 되어 있어,

일생동안 학문을 탐구하며 인품과 덕망이 높았던 할아버지(함계 정석달)를 기리기 위하여

그의 손자인 죽비공이 1779년에 건립한 것을 알수 있습니다.

 

 

 

 

함계정사를 처음 세운 함계(涵溪) 정석달(鄭碩撻,1660∼1720)의 자는 가행(可行) 호는 함계(涵溪) 본관은 오천(烏川)이며,

충무위대호군(忠武衛大護軍) 시심(時諶)의 맏아들로 태어 났으며,

갈암 이현일(葛庵 李玄逸)에게서 수학하였고,

인품과 덕망이 뛰어나 병와 이형상, 훈수 정만양, 지수 정규양, 밀암 이재, 병애 조선장 등과 학문을 강론하면서,

일생을 성리학에 몰두하여 일생에 학문을 탐구하고 그 인품과 덕망이 고을에 높았으며,

저서로는 가례혹문(家禮或問)과 문집(文集)이 전하고 있고,

 

 

 

 

손자인 정일찬(鄭一鑽,1724~1797)은 1724년(경종 4)에 태어나 1796년(정조 20)에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

일찬은 어려서부터 효성스럽고 품성이 반듯해 고을에서 칭찬이 자자했던 인물로,

일찍이 가학(家學)을 이어 받아 힘써 익혔으며,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등과 교유하며 퇴계학의 정수를 전수 하였으며

또한 조부 정석달(鄭碩撻)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함계정사(涵溪精舍)를 중건 하였습니다.

 

 

 

할아버지가 강학을 위해 몇 번이나 짓고자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못해 생전에 뜻을 이루지 못했던 것을,

그 손자가 마음에 두고 건립한 뜻깊은 건물로,

경북 영천의 문화재인 "함계정사(涵溪精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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