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현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인 "현리 삼층석탑(縣里 三層石塔)"과,

함께 있는 "현동 당간지주(縣洞 幢竿支柱)" 입니다.

 

영양 현리 삼층석탑(英陽 縣里 三層石塔)을 찾으면,

너른 들판에 서로 마주하고 있는 영양 현동 당간지주(英陽 縣洞 幢竿支柱)을 먼저 만나게 되며,

 

 

 

 

"영양 현리 삼층석탑(英陽 縣里 三層石塔)"은 보물 제61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석탑은 높이 4.27m의 높이에,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전형적인 양식이고,

 

 

 

 

기단과 탑신부에 많은 장엄조각이 있고,

하층기단과 상층기단 상면에는 각각 호형(弧形)과 각형(角形)의 굄이 있으나 각선(刻線)이 분명하지 않으며,

기단이나 탑신부의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나 탱주(撑柱 : 받침기둥)는 굵은 편이고,

기단의 중석과 옥신석은 높은 편이고 옥개석(屋蓋石) 처마 밑은 수평이나 받침 수는 4단으로 줄었으며,

 

 

 

 

하층기단의 중대석에는 1면에 3구씩의 십이지상(十二支像)이 조각되어 있어,

십이지상은 천의(天衣)가 나부끼고 손에는 각각 무기를 들고 있는 좌상이며,

 

 

 

 

상층기단 중석에는 팔부중상(八部衆像)을 1구씩 조각 하였는데,

8부중상은 통일신라 중기 이후 석탑에 등장하는 모습으로,

단순히 탑의 장식에만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탑을 부처님의 세계인 수미산으로 나타내려는 신앙의 한 표현이기도 하며,

 

 

 

 

초층 옥신석(屋身石) 사면에는 사천왕상 1구씩을 조각 하였는데,

 

 

 

 

이들 조각은 건립 당시에는 상당히 우수하였을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닳아 없어져 원래 모습이 분명하지 않은 부분이 많아 보이고,

 

 

 

 

각 층의 지붕돌 밑면에는 물을 뺄 수 있도록 홈이 파여 있고,

4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옥정(屋頂)에는 각형 2단의 옥신받침이 있으나,

상륜부는 모두 없어 졌습니다.

 

 

 

 

현리 삼층석탑(縣里 三層石塔)은,

탑 전체가 고준(高峻)하고 옥개석 받침 수가 감소하는 등 각 부 비례에 난조가 보이나,
영양지방에 건립된 많은 석탑 중에서도 화천동삼층석탑(化川洞三層石塔, 보물 제609호)과 함께 특색을 보이고 있어,
건립시기는 남북국 시개인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 후반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1972년 보수를 하여 원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영양의 화천리 삼층석탑에 관한 내용은 아래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화려한 조각장식의 신라석탑, 영양의 화천리 삼층석탑(化川里 三層石塔)

 

 

 

 

들어오던 입구에 서있는 "영양 현동 당간지주(英陽 縣洞 幢竿支柱)"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85호로 지정 되었으며,

현재에는 두 개의 지주 가운데 서쪽의 것은 넘어지고 동쪽의 지주 하나만 남아 있어,

 

 

 

 

남북국 시대인 통일신라의 당간지주로 높이는 210cm이다며,

이 곳 당간지주는 위에서 아래로 굵어지는 네모꼴 화강암으로 된 돌기둥으로,

 

 

 

 

당간지주가 땅과 만나는 부분 안쪽에는 별도의 돌로 만든 간대(竿臺)를 볼수 있으며,

 

 

 

 

기둥바깥 면의 중앙에 굵은 종선문(縱線文)을 새겨 장식을 했고,

 

 

 

 

정상부분에는 활모양(호면, 弧面)으로다듬었고,

안쪽면의 정상에는 장대를 꽂는 구멍(간구, 竿溝)이 깊게 파져 있으며,

 

 

 

 

당간은 절에서 깃발인 당(幢)을 달아두는 장대이고,

기둥인 지주(支柱)는 장대를 지탱하도록 하기 위하여,

당간의 좌우에 세워 둔 돌기둥인데,

이 당간지주에는 조각된 장식은 거의 없으나,

굵고 묵직한 형태는 소박하면서 안정감을 주고 있습니다.

 

 

 

 

남북국 시대인 통일신라의 삼층석탑과 당간지주로,

인근에 있는 "화천리 삼층석탑"과 함께 비교헤보면 좋을 석탑 자료이며,

화려한 조각의 장식이 있는 석탑으로,

경북 영양의 문화재인 "현리 삼층석탑(縣里 三層石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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