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이 추웠던 올 겨울을 보내면서,

조금씩 날씨가 풀리는듯 하여,

봄의 화사함을 만끽해 보고싶은 마음이 일어,

봄이 왔음을 가장먼저 알리는 꽃 가운데,

매화(梅花) 대해서 살펴 보고자 합니다.

 

 

매화(梅花)는 봄이 왔음을 가장먼저 알리는 꽃중의 하나입니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매화(梅花)는 다른 나무보다 꽃이 일찍 피는데,

그 때문에 매실(梅實)나무는,

꽃의 우두머리를 의미(意味)하는 "화괴(花魁)"라고도 합니다.

중국의 쓰촨성이 고향인 매화나무는,

옛부터 중국 사람들도 곁에 두고 아꼇던 나무로,

매화가 사람과의 인연은 꽃이 아니라 열매로 출발했다고 하며,

고조선 시기인 청동기시대 때부터 기록이 남아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서기 41년인 고구려 대무신왕 24년의,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매화(梅花)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살벌한 겨울의 메마름과 추위를 무릅쓰고,

이른 봄에 꽃을 피우며 맑고 깨끗한 향기를 그윽하게 풍기는 매화(梅花)는,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일찍 피기에 "조매(早梅)",

추운 날씨에 핀다고 "동매(冬梅)",

눈 속에 핀다고 하여 '설중매(雪中梅)'라도 부르며,

색에 따라 흰색이면 "백매(白梅)",  붉은 색이면 "홍매(紅梅)"라고 불렀으며,

우리나라 화가의 경우 대개 18세기까지는 백매를 선호했으나,

19세기부터 홍매를 선호했다고 하며,

 

 

 

 

 

매화의 열매인 매실은,

홍색(紅色)으로 익기 전에 따서 소금에 절였다가 햇볕에 말린 것은 백매(白梅),

소금에 절이지 않고 볏짚을 태워 연기(煙氣)를 쐬면서 말린 것은 오매(烏梅)라고 하여,

약용(藥用)으로 쓰였고,

또, 뿌리는 매근(梅根), 가지는 매지(梅枝),

잎은 매엽(梅葉), 씨는 매인(梅仁)이라고 하여,

역시(亦是) 약용(藥用)으로 쓰였는데,

덜 익은 열매를 소주에 담가 매실주(梅實酒)를 만들고,

매실(梅實)로 매실정과(梅實正果), 과자(菓子) 등을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매화는 흥취의 요소까지 갖추었는데,

달빛 아래에서 바라보는 매화는 낮보다 더 화사할 뿐만 아니라 은밀하면서도 요염하기까지 하기에,

이를 "월매(月梅)"라고 불렀었는데,

그래서인지 월매는 기생들의 예명으로 많이 쓰였으며,

우리가 알고있는 춘향의 어머니도 그러 합니다.

하지만 매화를 느끼는 흥취의 백미는 역설적으로 꽃이 지는 시기여서,

짧은 생이지만 치열하게 살다가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지며 꽃비가 되는데,

이름하여 "매우(梅雨)"로 불리웁니다.

 

 

 

 

 

 

매화는 동양 문화권에서는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며,

매화를 "사군자(四君子)"인 매난국죽(梅蘭菊竹)중에서도 으뜸 인것은,

만물(萬物)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꽃을 피워 봄을 가장 먼저 알려 주므로서

불의(不義)에 굴(屈)하지 않는 선비 정신(精神)의 표상(表象)으로 삼았고,

늙은 몸에서 정력(精力)이 되살아나는 회춘(回春)을 상징(象徵)하였으며,

 

 

 

 

 

"세한삼우(歲寒三友)"는 겨울에 그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식물들로,

"겨울철의 세 친구"라는 뜻이며,

추위에 잘 견디는 소나무(松)와 대나무(竹),

그리고 매화(梅)나무를 흔히 한 폭의 그림에 그려서 "송죽매(松竹梅)"라 부릅니다. 

세한삼우는 추운 겨울을 이겨 내듯이,

어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굳건히 살아남는 끈질긴 생명력,

굳은 의지, 확고한 신념 즉 신의를 상징하는 선비정신을 나타낸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양에서의 매화사랑을 살펴보면,

중국 송나라의 범성대(范成大:1126~1193)는,

세계 최초로 매화나무에 관한 전문서인 "매보(梅譜)"를 편찬 하였는데,

중국에서 매화가 문인화로 등장하는 것은 북송시대부터이며,

선비들이 매화를 그린 것은 자신의 지조와 절개를 드러내기 위해서 였는데,

중국 북송시대 임포(林逋:967∼1028)는 "매화 그림"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 사람으로,

그는 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아들로 삼아 숨어 살았다고 하며,

그의 작품 "산원소매(山園小梅)"에 등장하는 시어(詩語)는 후대에 매화 그림의 단골 화제(畵題)가 되었고,

이때부터 달과 함께 그린 "월매도(月梅圖)"와 물가에 가지가 거꾸로 자라는 "도수매(倒垂梅)" 등이 유행하였는데,

경북 구미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인 "매학정(梅鶴亭)"도 임포(林逋)를 모델로 삼은 것이라 합니다.

 

 

 

 

 

가메이도 매화정원(龜戶梅屋敷) - 반 고흐의 모사

일본인들의 매화 사랑도 뒤지지 않는데,

일본적인 특징을 잘 드러내는 매화 그림 중,

에도시대 오카타 고린의 "홍백매도 병풍(紅白梅圖屛風)"도 유명하지만,

같은 시기 우타가와히로시게의 에도백경(江戶百景) 중 하나인 "가메이도 매화정원(龜戶梅屋敷)"도 유명한데,

용이 누워 있는 것과 같은 이 판화 그림은 반 고흐가 유화로 모사하면서 더욱 유명해 졌습니다.

 

 

 

 

 

경남 산청의 정당매(政堂梅)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나무는 "정당매(政堂梅)"이며,  

이 나무는 조선전기의 문신이자 서화가인 강희안(姜希顔)의 조부가 되는,

고려후기~조선초 공신이자 문신인 강회백(姜淮伯:1357~1402)이 심은 나무로,   

정당매는 강회백의 벼슬이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라 하며,  

지리산 자락 단속사에 있는 정당매는,

600년의 세월을 견딘 탓에 키도 작고 죽은 가지도 적지 않은데,

정당매 앞에는 매화를 심은 뜻을 기린 비석도 남아 있으며,

 

 

 

 

 

(김홍도의 백매)

옛 선비들이 매화나무를 좋아한 이유는,

추운 날씨에도 굳은 기개로 피는 하얀 꽃과 은은하게 배어 나는 향기인 매향(梅香) 때문으로,

한국적 풍속화로 조선 시대 4대 화가에 꼽히는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미상)는,

매화(梅花)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인물로,

하루는 상인이 매화나무를 팔려고 왔지만 김홍도는 돈이 없어 살 수 없었는데,

마침 김홍도에게 그림을 청하였고 그 사례비로 3,000냥을 받게 되자,

김홍도는 2,000냥으로 매화나무를 사고 800냥으로 술을 사서 친구들과 함께 마셨고 하며,

그래서 이를 "매화음(梅花飮)"이라 전하고 있습니다. 

 

 

 

 

 

 

회연서원(檜淵書院)

동방오현(東方五賢) 중 한 사람인 한훤당 김굉필의 외증손자이자

퇴계 이황의 제자인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는,

자신의 고향인 성주에 "회연서원(檜淵書院)"을 세우고,

뜰에 매화를 심고 "백매원(百梅圓)"을 만들어 수양 했다고 전하는데,

지금도 회연서원에는 이른 봄 만발한 매화의 군락을 볼 수 있습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매화 사랑은 각별했다고 전하는데,

숨을 거둘 때 남긴 유언도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 이었다고 하며,

퇴계(退溪)는 "매화(梅花)는 추워도 그 향기(香氣)를 팔지않는다."는 말을,

평생 좌우명(平生 座右銘) 으로 삼고 살았다고 합니다. ​

 

 

 

 

 

퇴계(退溪)의 매화와 관련한 사랑 이야기는 유명한데, 

그가 48세에 단양 군수로 부임하면서 그곳에서 18세의 관기(官妓) 두향(杜香)을 만나게 됩니다.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었던 퇴계는,

시(詩)와 서(書)와 거문고에 능했고 매화를 좋아하는 두향에게 반해서 사랑에 빠졌으나,

아쉽게도 퇴계는 9개월 후 풍기 군수로 발령을 받고 단양을 떠나야 했습니다.

헤어지기 전날 밤 퇴계와 두향은 이별의 아픔을 시문으로 나누며 애달파 했다고 하며,

단양을 떠나는 퇴계의 짐 속에는 두향이가 애지중지 가꾸던 매화 화분이 들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다시 만날 기회가 없었지만 서로 잊지 못하였고,

1570년 퇴계가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는데,

퇴계는 두향이 준 매화를 죽는 날까지 곁에 두며 보았고,

두향은 퇴계가 타계하자 생전에 그와 함께 자주 가서 대화를 나누었던,

남한강 거북바위에서 투신하여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도산매(陶山梅)

퇴계는 평생을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는데

심지어 나이가 들어 자신의 모습이 초췌해지자,

매화에게 그 모습을 보일수 없다면서 매화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했을 정도이며,

도산서원에서는 퇴계(退溪)의 매화를 만날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토종 매화로,

매화의 연륜과 품격을 갖춘 "고매화(古梅花)"는,

약 200여 그루 정도가 전국 각지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2007년 문화재청은,

오랜 세월 우리 생활·문화와 함께해온 매화 4그루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는데,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古佛梅, 천연기념물 제486호)"와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栗谷梅, 제484호),

구례 화엄사 "길상전 앞 백매(白梅, 제485호)", 그리고 순천 선암사의 선암매(仙巖梅, 제488호)가,

국가문화재로서 나라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그 외, 양산 통도사의 "자장매(慈藏梅)"와, 화엄사의 홍매화인 "흑매(黑梅)",

그리고 산청 남사예담촌의 "원정매(元正梅)"와 전주 경기전의 "녹약매(綠藥梅)" 등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매의 반열에 올릴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편에는,

우리나라 사대부가 극진히 사랑했던 매화(梅花)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고매화(古梅花)에 찾아서,

지역별로 나누어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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